18일 오전 울산 북구 21세기좋은병원. 숨진 박주현(19)양의 아버지 눈에선 굵은 눈물이 얼굴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그는 빈소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내내 눈물만 흘렸다. 잠시 후 박양 아버지가 곁에 벗어둔 외투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 꽂힌 증명사진 속에선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미소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의 참변 소식을 그날 밤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부산외대 비즈니스일본어과에 합격해 내일 모레 입학식을 한다고 한껏 들떠 있던 딸. 주현이는 새 학기를 위해 사둔 새 운동화를 신어도 보지 못한 채 갑자기 떠났다.
손에 쥔 손수건으로 틈틈이 남편의 눈물을 닦던 어머니도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왜 우리 딸이냐”며 끝내 오열했다. “안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 위로하던 언니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의 울음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도 못했다. 속으로 흐느끼는 큰 딸 옆에서 아버지는 “제가 지은 죄가 많아 그런 모양”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겨진 세 가족의 눈에선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18일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10명의 희생자들이 안치된 4개 병원에선 유족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를 향한 원성도 높았다.
딸 진솔이를 잃은 김판수(54)씨는 “그 높은 데서 판넬이 떨어져 딸 얼굴이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울먹였다. 태국어과에 다니던 진솔이는 세계일주 여행 가이드를 꿈꿨다. 착하고 심지 굳은 딸은 아버지에게 “꿈을 이룰 테니 지켜봐 달라”고 약속했지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홀로 떠났다.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가 맡은 일에 빈틈이 없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고 말했다.
숨진 박소희(19)양의 아버지는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장을 떠났다가 붕괴 소식을 접하자마자 급히 귀국했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오직 딸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귀국한 그에게 가족들은 차마 딸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부산 금정구 부산침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딸의 죽음을 알게 된 박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끼던 막내딸의 이름만 목 놓아 불렀다.
강혜승(20)양 큰어머니는 “지금 벌어진 일이 정말이냐”고 취재진에게 거듭 물었다. 혜승이를 자신의 딸처럼 여겼다는 그는 “설 때 세배를 받고 대학가서 예쁜 스무 살 아가씨가 되라고 덕담했었다”며 “악몽을 꾸는 것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혜승이는 원하던 외대 아랍어과에 합격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워낙 순하고 예쁜데다 공부 잘하고 애교가 많아 온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학교 측의 안일한 대처도 비판했다. 강양의 큰어머니는 “학생들을 산비탈 가건물에 몰아놓고도 교수진은 거의 가지도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솔 학생 아버지는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MT를 강행한 것은 자살행위”라며 “학교가 주관한 행사가 아니더라도 학생 1000여명이 함께 간 행사에 학교가 일차적 책임이 있는데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울산=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