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 500년 익스트림’]
민주당은 용맹한 죽음을 택하라!(5)- 폭설로 300여명 사망, 불야성 ‘강남’
순조 2년(1908년) 정월. 한양엔 쉼 없이 눈이 내렸다. 그 바람에 북한산과 관악산 나무꾼들이 눈길에 막혀 땔감을 확보하지 못해 도성은 엄동설한에도 불 지피는 집이 드물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은 세도가뿐이었다.
남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면 북촌(지금의 ‘강남’ 격)은 해질녘이면 마치 안개 낀 듯 군불 연기로 북악산 아래쪽 일대 띠를 형성했다. 하지만 남산 딸깍발이들이 사는 남산 아래는 냉기가 흘렀다.
이 무렵 전라도와 충청도 서해안은 오척 높이의 눈이 쌓여 동사자가 속출했다는 장계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같은 장계는 일본이 고종 42년(1905년) 통감부 관제를 실시하면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해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조선 경시청에 일본 고등순사들이 박히면서 전령이 한양에 닿기도 전에 통감부가 알고 있었다. 초대 통감으로 취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외교업무만 하겠다고 고종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으나 순종이 즉위하면서 태도를 바꿔 전국 지방관청에 통감부 지청인 이사청(理事廳)을 설치하고 일제 경찰을 전국적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철도와 통신을 장악한 그들은 폭설과 폭우 등에 관한 기록을 그날그날 통감부에 전달했다. 서해안 서천과 고창 등에선 폭설로 향교와 관청, 민가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속출했다. 아래로는 무안, 위로는 태안까지가 폭설 피해 지역이었다.
여기에 계속된 가렴주구로 농사꾼들이 집을 버리고 유랑했고, 남아 있는 집들은 명화적과 같은 무리에 모종 곡식마저 빼앗겼다. 언 땅을 파고 어린 아이를 묻는 민가에선 곡소리마저 낼 힘이 없었다.
한편 통감부 전주 이사청은 ‘고창 부안 일대 폭설 사망자 300명 추정’이라는 무전을 통감부로 날렸다. 그때 부안 군수는 폭설 장계를 지닌 전령을 눈을 뚫고 나가도록 했으나 이틀이 지났는데도 겨우 죽산 호남평야 너른들을 지나고 있었다.
*
보름 가까인 눈이 내리고 남산 소나무들이 눈을 못 이겨 우두둑 부러져 나갔다.
석개는 필동 오혁의 세집에서 장독 위에 쌓인 눈을 바가지에 듬뿍 담았다. 눈을 녹여 밥이라도 지을 요량이었다. 땔감은 어제 밤 통감부 공사 길목에 쌓인 눈을 헤치고 드러난 맨 땅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주워 놓은 것이었다.
그 무렵 조선 통감부는 남산 서쪽 자락을 파헤쳐 가며 통감부 영역을 넓혀갔다. 통감부 안에 신사를 짓는다며 대공사에 들어갔는데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노역자들은 일본에서 배타고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신사 터(지금의 숭의여전 자리)는 널빤지로 성벽만큼 높은 담을 쌓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집체만한 짐차들이 연신 드나들었다. 딸깍발이들은 그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놈들의 처사에 혀를 차는 자도 있었고, 신세계를 만나 절망하는 자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광경이 신기해 매일 공사장 주변을 기웃 거렸으나 무장한 경찰이 채찍으로 내려치며 내쫓았다.
*
석개가 밥상을 들고 들어서자 오혁과 나철이 좁은 방에서 가로 앉으며 밥상 놓을 자리를 내주었다.
“네가 수고가 많구나.”
“아닙니다. 밥이 시원찮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쌀이 조금 밖에 남지 않아 조밥을 지었습니다. 다행히 작년 가을에 묻어 둔 배추김치와 동치미가 넉넉해 같이 올렸습니다. 맛있게들 드십시오.”
나철의 얘기에 석개가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말했다.
“자네도 같이 먹세. 남녀가 따로 먹는 것도 버려야할 풍습일세. 남녀가 같이 고생하는데 여인이라고 부뚜막에 앉아 먹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이치에 맞지 않네. 우리가 참 무식한 세월을 살았어.”
오혁이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는 석개에게 이같이 말했다.
“저같이 미천한 것이 어찌 어르신들과 겸상을 한단 말입니까? 저는 나가 먹겠습니다.”
“어허, 말 듣게 이 사람아. 동지들이 아닌가. 개명한 세상이고, 구국의 뜻을 같이한 동지들 사이에 무슨 먹는 걸 가지고 격을 차리나. 앉게”
오혁이 재차 주저앉히려 하자 석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혁. 자네 밥그릇을 주려는가? 석개 것은 없는 데 뭘 먹으란 얘긴가?”
나철이 껄껄 웃으며 오혁을 바라보자 “엉? 아? 이런! 허허허” 하며 웃었다.
석개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석개는 부엌으로 가 솥 바닥을 긁어 누룽지를 사발에 담았다. 눈발은 더욱 굵어졌다. 발아래 진고개에 전등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진고개(서울중앙우체국 뒤편)는 어느 때부턴가 전깃불로 해가지지 않았다.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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