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연맹)이 김연아(24)의 올림픽 2연패 좌절로 이어진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편파 판정 의혹에서 실체가 모호한 재심사 요청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올림픽 기간 중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의 러시아 귀화 논란에 이어 두 번째로 맞은 대형 악재다.
친콴타 ISU 회장에게 요청했다더니…“정말 읍소만?
22일 우리나라 선수단 측에 따르면 연맹은 전날 오타비오 친콴타(76·이탈리아) 국제빙상연맹(ISU) 회장에게 “대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진행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친콴타 회장은 “확인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아는 이 경기에서 최종 합계 219.11점으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224.59점·18·러시아)에게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은 심판진에 개최국 러시아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며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했다. 연맹도 이런 의견을 담아 재심사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맹의 요청과 관련한 ISU의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오후 10시 현재 ISU 공식 홈페이지에는 “모든 경기에서 심사가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밝힌다… ISU는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과 관련, 어떤 공식적인 항의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판정이 공정하고 완벽하다고 자신한다”는 내용의 21일(현지시간)자 성명이 최신 공지로 등록돼 있다. 제목은 ‘ISU의 심사 체계에 대한 성명(ISU Statement on the ISU Judging System)’이다.
김연아나 연맹을 거론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재심사 요청에 대한 ISU의 직접적인 답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간접적인 답변일 경우 연맹의 재심사 요청은 불과 수시간 만에 조사와 논의 과정을 거쳐 ‘번복 불가’ 입장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연맹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연맹의 소극적인 대응을 확신한 일부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정부의 전면 감사 예고로 이어진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논란에 이어 두 번째 대형 악재로 번질 조짐이다. 안현수는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선전하며 2011년 12월 귀화 2년여 만에 논란을 다시 점화했다. 안현수는 쇼트트랙 3관왕을 달성했고 그의 금메달은 모두 러시아의 종합 성적으로 들어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우리 선수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부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는 연맹이나 협회는 필요 없다”거나 “납득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읍소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불거진 논란… 국제빙상계 고위관계자 발언까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심판진의 편파 판정 의혹은 연일 세계인의 반발로 이어졌다. 국제인권 청원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는 한 네티즌이 시작한 ‘판정 재심사 촉구’ 서명운동은 하루를 넘겨 진행 중이다. 상대는 ISU다. 오후 10시 현재 참여자는 190만명을 넘겼다. 목표 참여자는 300만명으로, 전날보다 100만명을 늘었다.
편파 판정 의혹에 무게를 싣는 국제빙상계 고위관계자의 발언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미국 일간 USA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심판진이 소트니코바에게 편향돼 있었다. 이게 그들(러시아)의 힘”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이 관계자에 대해 ‘올림픽 피겨스케이팅계 고위관계자(A high-ranking Olympic figure skating official)’라고 소개했을 뿐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심판진의 암묵적 합의나 개최국 러시아의 압력에 대한 정황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폭로보다는 사견을 밝힌 쪽에 가깝다. 그러나 “테크니컬 패널의 총괄이 러시아인이라는 점이 그림(스트니코바의 금메달)을 완성한다”는 등 구체적인 발언으로 주장에 설득력을 더했다.
신문은 “9명의 심판 중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판정을 조작하다 자격정지 1년을 받은 유리 발코프(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협회장의 부인인 아랄 셰코프세바(러시아), 이 외에도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 출신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스트니코바는 경기를 마친 뒤 셰코프세바와 부둥켜안으면서 편파 판정 의혹에 불씨를 키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