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삼성전자 직원이 공식 블로그인 삼성투모로우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견해를 올렸다. 그동안 이 영화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던 삼성전자는 이 글을 블로그 첫화면에 띄워 사실상 공식입장임을 알렸다.
삼성전자 DS부분 커뮤니케이션팀 김선범 부장은 23일 삼성투모로우에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김 부장은 “지난 주말 저녁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 회사가 정말 그런 일을 했어?’라고 물어봤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얘기였습니다”라며 “학교 친구들과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불쌍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고, 사실을 숨기려 나쁜 일을 서슴지 않는 회사의 모습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라고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전했다.
고(故) 황유미 씨가 근무했던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 부장은 “20년 동안 자랑스럽게 일해 온 회사가 영화에서는 돈으로 유가족을 회유하고 재판의 결과를 조작하려 하는 나쁜 집단으로 묘사됩니다”라며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일반 관객들이 저의 회사에 대해 느낄 불신과 공분을 생각하면 홍보인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하나의 약속’은 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황유미 씨는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 반도체 근로자 중 처음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김 부장은 “고인과 유가족을 만나 아픔을 위로하고자 했던 인사 담당자를 알고 있습니다”라며 “영화에서는 그가 직원의 불행 앞에서도 차갑게 미소 짓는 절대악으로 묘사됐지만, 제가 아는 그분은 영화 속 아버지처럼 평범한 가장이고 직장인일 뿐입니다. 오히려 고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던 분입니다”라고 알렸다.
영화에서 ‘진성 반도체’의 인사담당자는 유가족을 돈으로 회유, 협박하고 심지어 고인의 남동생이 돈벌이에 절실한 상황임을 이용해 취직을 시키기도 한다. 남동생이 회사 앞 시위대를 막는 데 투입됐다가 아버지와 맞닥뜨려 갈등을 겪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저는 엔지니어도 아니고 화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기에 어떤 물질이 어떻게 해로운지도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 하나씩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하지만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정부의 환경 기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제가 근무하는 일터의 안전에 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저 또한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으로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가슴으로 이해합니다. 또 그 아픔을 위로하지 못하고 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길에서 싸우게 한 회사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하지만 영화는 영화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6일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통계 24일 오전 9시 기준으로 누적관객수 44만2000여명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근로자 백혈병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뤄 개봉 전부터 ‘외압설’이 제기됐고, 제작사 측은 21일 부당한 상영관 배정을 이유로 롯데시네마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