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이 편지가 닿을 때쯤이면 엄마, 아빠에게는 손자, 손녀가 있겠지?”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대지진 3주기를 앞두고 편지 한 통이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에 빠뜨렸다. 당시 행방불명된 20대 여성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가 최근 도착한 것이다.

3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 1월 12일 이와테현에 살고 있는 한 중년 부부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우체통에서 꺼낸 흰 봉투를 무심코 들여다 본 부부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발신인 란에 2년 전 쓰나미에 휩쓸려 간 딸(당시 26세)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대지진이 일어난 후 사고 현장에서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가며 미친 듯이 찾아 헤맸고, 시체도 못 찾은 채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사망신고를 했던 딸이었다.

잠시 ‘어딘가에 살아 있었나?’하는 희망을 품고 열어 본 봉투. 2장으로 된 편지를 읽으며 부부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편지는 딸이 10년 전 보낸 것이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딸은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의 한 버스회사 가이드로 취직했다가 2004년에 이와테현에 돌아와 관청 임시직원이 됐다. 딸은 이와테현으로 돌아오기 얼마 전인 2004년 1월 10일에 아이치현에 있는 ‘메이지무라’라는 박물관을 가게 됐다. 거기서 10년 간 보관했다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편지 서비스를 이용했고, 10년 후인 2014년 1월 12일에 온 것이다.

자신이 7년 후 쓰나미에 휩쓸려 갈 것이라고 상상도 못한 딸은 부모에게 버스가이드로서의 일상, 10년 후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다짐 등을 담담히 전했다.

막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은 딸은 “그동안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이젠 내가 엄마, 아빠를 보살필게”라고도 썼다.

딸은 대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 8년 간 교제한 중학교 동창과 결혼을 약속했다. 편지를 보낼 당시 딸은 10년 후면 자신도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엄마, 아빠에게 손자, 손녀 이야기를 한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도 혼자면 어떡하지?”라고 애교 섞인 걱정도 했다.

아버지(59)는 신문에 교토에서 일하던 딸이 이와테현으로 돌아온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밝혔다.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불러들였고, 마을에 쓰나미가 들이닥쳤을 때 집은 피해를 면했지만 관청이 통째로 휩쓸려가면서 딸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라며 “(딸이 사라진 후)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우리 딸이 하늘나라에서 웃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