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의 기억입니다.
권 선생은 1970년대 안동 일직면 일직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면사무소 앞에 매달 한 번씩 들러 쌀 배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지급했지요. 쌀 8㎏과 보리쌀 2㎏이 지급됐습니다. 권 선생은 “(그걸 받은 사람들은) 금메달 받은 선수처럼 활짝 웃었다”고 했습니다.
2. 권 선생과 가난한 이들은 한 겨울 손발을 호호 불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권 선생은 그때 차례를 기다리며 한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같은 처지이신 분이었죠.
3. “그 애 때문에 내가 죽으면 안된다.”
그 할아버지, 권 선생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정박아’에다 ‘벙어리’인 여덟 살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할아버지가 쌀 배급 받으러 나오지 않습니다. 딸을 어느 시설에 맡기면서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된 거죠. 요즘 용어로 차상위계층이 된 거겠죠.
4.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한 ‘세 모녀 자살사건’ 여파가 상당합니다. 이들은 사실상의 차상위계층이었습니다.
5. 4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이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2월 국회가 끝났는데도 시급했던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진정한 새 정치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정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새정치’라는 말에 왠지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입니다.
6. 이 발언을 두고 양 포털에 수천 개의 댓글이 붙었습니다. “제발요. 말로만 그러지 말고요.” “서민들과 같은 눈높이 하셨으면 좋겠다” “기초연금 통과 안 시킨 야당 책임이 크다” “댓글 달 시간에 일을 해라. 실업자는 직업 찾고” 등 진정으로 걱정하는 반응과 이도저도 아닌 ‘열폭(열등감 폭발’의 준말) 등으로 뜨겁습니다. 어느 사안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드셉니다.
7. ‘세 모녀’는 정말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죽음을 택했을까요? 19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이란 소설에 나온 것처럼 입에 풀칠을 못해 죽었을까요? 한 네티즌이 대통령의 말에 “나는 라면 먹는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우리 사회, 라면 먹는 한 있어도 결코 굶어죽지 않을 만큼 사회안전망이 되어 있습니다.
8. 문제는 희망의 부재입니다. 신용카드까지 연체해 가며 살아가려고 애썼으나 병마와 실직 등으로 도무지 신용 불량 상태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던 거죠. 그리하여 주인집에 “마지막 집세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네요. 선한 이들이 분명했습니다.
9. 세 모녀의 죽음엔 계층 이동 사다리의 붕괴가 담겨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던 70년대가 더는 아니란 얘기죠. 돈 없는 집안 자식, 거액의 돈 내며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다닐 수 없는 구조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양극화의 심화죠.
10. 권정생 선생, 옥이 할머니 입을 빌어 말합니다.
“사람이 뭐여. 걸어 다니는 똥공장이지. 그럼 뭐해. 똥감 장만하느라 등 굽도록 일해. 그런데도 인간 세상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제”
할머니 얘기를 두고 그는 “같은 똥 공장인데도 역시 구만 층이나 될 만큼 불평등한 세상이다. 한 숨이 절로 난다”고 했습니다.
11.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복지 사각 지대 사람들은 나라가 구제해야 합니다. 아사자 구제가 사회복지 정책이 아닙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