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요. 박주영(29·왓포드)이 또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습니다. 13개월 만에 출전한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거품 논란’을 만회할 만한 결승골을 터뜨렸지만 정작 축구팬들에게 할 말은 없었나 봅니다.
박주영은 6일(한국시간) 그리스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아테네 카라이스카키 경기장의 믹스트존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거부한 겁니다. 믹스트존은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이동경로의 일부 구간으로 인터뷰를 허용한 공동취재구역입니다. 선수와 기자들이 무질서하게 뒤엉키는 혼란을 막기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설정한 장소죠. 선수 입장에서는 일일이 만날 수 없는 팬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변으로 인기를 끌어올릴 수도,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는 창구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박주영은 이번 경기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선수입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날에 입단한 2011년 8월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려 2년6개월여 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낸 박주영에게 이번 경기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표팀으로 합류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30대를 앞둔 박주영에게는 어쩌면 축구인생의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을지도 모릅니다.
팬들은 실전 감각이 부족한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에 의문을 제기했죠. 홍명보(45) 감독도 “박주영을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박주영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4일 아테네의 훈련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습니다. 이틀 만에 결승골을 넣어 홍 감독의 결단에 보답하고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믹스트존 인터뷰를 거부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자들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까지 설득했지만 박주영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중계방송을 시청하고 기사를 통해 전해질 박주영의 소감 한 마디를 기다린 팬들의 입장에서는 무시를 당한 셈입니다.
인터넷에선 박주영에 대한 실망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골을 넣기 전과 후의 태도가 다르다”거나 “팬과의 접촉을 포기한 오만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비난했습니다. “박주영이 소속팀에서 오랜 시간 결장을 반복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는 장소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냐”는 조롱도 나왔습니다.
홍 감독은 이번 경기를 바탕으로 브라질로 함께 떠날 대표팀 선수단을 구성할 겁니다. 박주영이 브라질로 떠나는 막차에 무난하게 올라타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경기장에선 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방을 보여줬는지 몰라도 팬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는 마지막 한방을 보여주지는 못한 듯 하군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뉴스룸 트위터, 친절한 쿡기자 ☞ twitter.com/@kukinews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