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국민사위' 함익병 病 "우리는 임신되지 않습니다""

"[전정희의 스몰토크] '국민사위' 함익병 病 "우리는 임신되지 않습니다""

기사승인 2014-03-13 17:08: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우리는 임신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임신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치누아 아체베 단편 소설 ‘전쟁터의 소녀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이지리아 어느 지방 여고생들이 행군을 하며 이같은 이상한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오랜 내전 끝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청년학생들은 새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앞 다투어 입대를 한다.

여고생들이 그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여성성에 문제가 없으니 부디 입대를 시켜달라는 시위인 셈이다. 법무부장관 레기날드 느왕끄오는 이 희한한 대오에서 풍만한 가슴을 지닌 예쁜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여고생이 느왕끄오에게 군입대를 신청하고 그는 거절한다.

그러나 그 여고생 글레디스와 한 검문소에서 마주친다. 소녀는 시민방위대 일원이 되어 느왕끄오가 탄 차를 검문한다.

“나 법무장관 레기날드 느왕끄오야”

“안녕하십니까? 짐 뒤 칸을 좀 조사해 보겠습니다. 서류 칸을 봐도 될까요?”

느왕끄오는 당황한다. 글레디스가 말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비롯해 아체베의 작품 대개는 폭력적 서구 권력에 맞서 자기 문화와 풍습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그리고 있다.

지난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우리나라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의의를 되새겼다. 우리나라 첫 여성대통령 취임 후 행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는 그 행사에 참석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에 초점을 맞췄다. 양 세력 통합 후 첫 회동이기 때문이다.

이날 우울한 뉴스가 전해졌다. 30대 싱글맘이었던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씨의 자살한 것이다. 그날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였다. 또 이날 한국여성의 전화는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123명이라고 집계한 것을 발표했다. 살인미수 등의 피해자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여성도 최소 75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사흘 후, 여성 문제는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서 황당하게 다가왔다. SBS TV 프로그램 ‘자기야-백년 손님’의 인기 출연자인 전문의 함익병 ‘돌출 발언’이었다.

그는 월간조선 3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나라 중 여자를 빼주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납세·국방 등 4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아들·딸에게 투표를 금지했다”라는 요지로 말한 것이 엄청난 후폭풍을 부른 것이다. “독재가 왜 나쁘냐”는 발언도 일파만파였다.

‘백년 손님’을 통해 ‘국민 사위’ 호칭까지 들었던 그의 이미지를 뒤집는 반전이었다. ‘선망의 의사 사위’ 정체성이 짧은 순간 드러났다.

곱게 표현 하자면, 그는 지독한 선민의식을 지녔다. 아니면 단지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한, 세상 물정 모르는 필부였을 것이다. 선민이었던 필부였던 문제는 50대 초반인 그의 세대가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선민이거나, 퇴근 후 술자리 수준 대화를 나누는 필부라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대중이 함익병 발언에 무게를 두고 받아들인 것은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의 수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학사판 새교과서 수준만 열어봐도 여성인권과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에 대학 나온 여성이 극히 드물었다. 함씨의 어머니 세대는 남편·아들과 겸상 못하고 산 것이 불과 엊그제다.

지금 대한민국은 출산율 저하로 국력이 쇠할 판이다. 대통령이 여성의 경력단절을 챙기라고 하는 판에 여성이 주 고객인 피부과 의사가 친구 사이에도 뱉기 힘든 궤변인지 모르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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