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사실은 나…” 고교생 목숨 구한 ‘경찰관 누나’

“미안, 사실은 나…” 고교생 목숨 구한 ‘경찰관 누나’

기사승인 2014-03-14 01:43:00

[쿠키 사회] “누나라고 속여서 미안. 사실 나 서른아홉 살이야∼.”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고교생 윤모(17)군이 담임교사에게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죽어버리겠다. 남산타워로 올라가고 있다’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을 끊었다. 연락을 받은 윤군 어머니는 경찰 112종합상황실로 신고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윤군은 서울 중구 남창동에 있었다. 실제 남산타워(N서울타워)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112상황실은 장충파출소 순찰차와 중부경찰서 실종팀 등에 윤군을 찾도록 지령을 내렸다.

오후 3시30분쯤 남산타워 주변에서 윤군을 찾기 위한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강력팀·타격대·지구대 등 경찰관 10여명이 남산타워 주변의 투신 가능 지점에 흩어졌고, 중부서 실종팀 이해정 경사 등 2명은 윤군과 계속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나 중부서 실종팀 경찰관 누나야! 지금 마음이 심란하겠지만 일단 전화라도 받아줘.’ 끈질기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 경사에게 오후 3시51분 마침내 윤군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윤군에게 이 경사는 “그래도 누나가 도와줄 게 있나 찾아보자”며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이 경사는 “경찰 누나인데 커피라도 한잔하자”라며 대면을 시도했다. 친근감을 주려고 계속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한 14년차 베테랑 형사의 시도는 적중했다.

오후 3시57분 남산타워 버스정류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윤군에게 이 경사는 “얼굴도 잘생겨서 왜 그러느냐”며 웃음을 유도했다. “혼자 가겠다”고 버티던 윤군이 ‘피식’ 웃으며 이 경사를 따라나선 건 이 말 때문이었다. “누나라고 속여서 미안해. 근데 이모는 되겠다.” 절망한 청소년의 마음을 풀어준 건 감동적인 설득도, 교훈적인 상담도 아닌 썰렁한 농담 한마디였다.

학교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는 윤군은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혼자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남산타워로 가면 죽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라고 털어놨다. 이 경사는 윤군을 중부서 앞 샌드위치 가게로 데려갔다. 오후 4시40분쯤 달려온 부모와 자신 때문에 남산 일대를 헤맨 경찰관들에게 그는 “앞으로는 이런 생각하지 않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김현섭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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