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법정의 휴대전화를 어이하리오… 증인신문 ‘실시간 중계’에 법원 골머리

[기획] 법정의 휴대전화를 어이하리오… 증인신문 ‘실시간 중계’에 법원 골머리

기사승인 2014-03-17 19:15:00
[쿠키 사회] 법원이 스마트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정의 휴대전화 사용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재판 상황을 단순히 녹음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재판을 ‘생중계’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지난달 5일 오후 6시30분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법정. 횡령 혐의로 기소된 정신지체장애인 A씨(50·여) 재판에서 심문을 받던 증인 B씨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2초간 만진 뒤 스마트폰을 다시 상의 윗주머니에 넣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문제는 공판이 끝나고 불거졌다.

피고인의 동생(47)이 “사회적 약자인 누나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증인들이 휴대전화로 증언 내용을 실시간 공유하며 모의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 차례로 법정에 설 예정이던 증인이 B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B씨가 이를 받고는 끊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상의에 넣었다는 주장이었다. 계속 ‘통화’ 상태로 있던 B씨의 스마트폰을 통해 법정 발언 내용이 그대로 다음 증인에게 생중계돼서 증인들이 서로 말을 맞췄다는 것이다.

A씨 측은 지난달 25일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고 “B씨가 범행 액수, 날짜, 장소, 시간 등 구체적 정황에 대한 법정 심문 내용을 다음 증인에게 편법으로 알려줘 법정을 유린했다”며 “피고인과 다른 증인들이 법정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법정 안에서 문자를 교환하는 장면도 CCTV에 찍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A씨 측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광주지법 감사실은 17일 “휴대전화 이용에 대한 규제와 원칙을 강화하고 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재판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편·불법 행위가 만연한 것은 마땅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법정 안에서는 재판장의 허가 없이 녹화·촬영·중계방송 등을 못하게 돼 있지만 제재 방안이 없어 재판장이 소송지휘권의 일환으로 감치·과태료 등의 처분을 내리는 게 전부다. 이마저도 현행범으로 발각되지 않으면 처벌하기 어렵고, 녹취·녹화와 달리 생중계 같은 편법은 증거가 남지 않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2011년 11월 곽노현 재판에서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녹음을 하다 적발돼 과태료 20만원 처분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지난해 9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1심 재판에서 한 방청객이 휴대전화로 재판을 녹음하다 퇴정 명령을 받았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차단하면 개인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와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할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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