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이 관리한 회사 인감도장, 비리 적발하고 공범 된 부장님=많게는 50%까지 납품단가를 부풀린 세금계산서가 KT 네트웍스(현 KT ENS) 김모(51·구속) 부장의 눈에 들어온 건 2007년 8월이었다. 김 부장은 협력업체 중앙티앤씨가 휴대전화 주변기기를 납품하고 매출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과정에 세금계산서의 납품단가를 조작한 사실을 알아챘다. 중앙티앤씨는 항의하는 김 부장에게 4600만원을 건넸고 김 부장은 이후 협력업체들과 한통속이 돼 대출사기에 적극 가담했다.
김 부장은 법인 인감도장이 허술하게 관리되는 점을 악용했다. 인감도장은 책상 위나 서랍에 방치됐고 관리는 아르바이트생이 했다. 김 부장은 “관리가 소홀한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인감도장을 몰래 꺼내 서류 위조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2008년 KT 네트웍스가 KT ENS로 전환되자 중앙티앤씨 서모(44) 대표는 본격적인 범행을 위해 인감도장을 아예 위조했다. 위조된 인감도장을 협력업체 경리가 스캔해 이미지 파일로 변환했고 원하는 문서에 자유롭게 붙여 넣었다. 이를 이용해 매출채권양도승낙서를 위조하는 등 서류를 꾸며 고가의 휴대전화 단말기와 네비게이션 등이 실제 납품된 것처럼 둔갑시켰다.
금융기관들은 대기업 자회사인 KT ENS를 철석같이 믿고 거액의 대출금을 내줬다. KT ENS 내부 서류와 형식이 다른 가짜 매출채권 양도승낙서를 은행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걸려오는 확인 전화는 모두 김 부장이 받았다. 김 부장은 휴대전화 단말기를 취급하는 모바일사업팀이 아닌 시스템영업개발부 소속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KT ENS 협력업체들이 허위 매출채권으로 담보 대출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서류는 날조된 세금계산서였지만 진위를 확인한 은행도 없었다.
◇금감원 간부 포섭해 흥청망청 수백억 탕진=경찰은 핵심 용의자들에게 금융당국의 조사 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대책 마련을 모의한 혐의로 금융감독원 김모(50) 팀장을 조사 중이다. 김 팀장은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 지난 1월 29일 협력업체 대표들과 통화하며 조사 내용을 알려줬다. 이틀 뒤에는 직접 서울 강남의 식당에서 이들과 만나 대응 방향을 협의하고 핵심 용의자인 엔에스쏘울 전모(49) 대표의 해외 도피까지 도운 정황도 포착됐다. 금감원은 자체 감찰을 통해 김 팀장이 전씨 등으로부터 접대와 금품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직위해제한 뒤 수사 의뢰했다.
부정 대출금 1조8335억원 중 2894억원은 상환되지 않았다. 핵심 용의자인 전 대표와 서 대표는 대출금을 돌려 막거나 사채를 갚는 데 1100억원가량 썼다. 또 수백억원은 상장회사를 인수하거나 명품 시계, 고급 외제차를 샀다. 경찰은 서씨가 311억원, 전씨가 560억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투자에도 거금을 쏟아 부었다. 이들은 공동으로 인천 부평의 175억원대 창고건물과 서울 목동의 100억원대 빌딩을 매입했다. 전씨는 경기 판교의 15억원대 고급 빌라를 사서 내연녀에게 선물했고 서씨는 고향인 충북 충주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호화 별장을 지어 부친에게 맡겼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김 부장과 서 대표 등 8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사기 대출에 이용하려 설립한 자산유동화전문회사(SPC) 대표 전모(38)씨 등 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해외로 달아난 엔에스쏘울 전 대표는 인터폴에 적색 수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