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1. ‘불륜이 낳을 파국을 염려한다면 유혹자가 자신에게 말을 건넬 때 피하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2.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의 한 대목이다. 파리 상류사회의 방종과 부도덕을 다룬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이 소설은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로 18세기말 프랑스 사회를 들끓게 했다. 1959년과 1988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프랑스혁명 직전 파리 상류사회는 ‘위험한 관계’에서 묘사된 것처럼 살롱문화를 중심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타락했다.
3. 지난 17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밀회’가 묘한 울림을 주고 있다.
4. ‘밀회’는 사회적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과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퀵배달 서비스를 하며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의 교감을 그리고 있다. 극 중 오혜원은 마흔 살 유부녀고, 이선재는 스무 살 청년이다.
‘밀회’는 이 두 사람이 나온 포스터(사진)가 말해주듯, 시청자의 시선에 따라 파격적이거나 충격적이다. 아들뻘 ‘남자’와의 닿을 듯 말 듯한 입술을 강조한 포스터는 ‘설렘’ 또는 ‘불편함’으로 다가들 것이다. 역시 시선에 따라 ‘웰 메이드 드라마’ ‘불륜드라마의 진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5. ‘밀회’의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는 “인생을 무리 없이, 안전하게 살아온 혜원이란 여자가 ‘돌 맞을 일을 저지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줄거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 얘기구나’ 싶은 러브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1회 대사에 “여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품격이 최고”라고 하나 인간의 욕망은 그 반대로 늘 속물적이다. 이 속물적 행위는 윤리와 부딪치며 죄를 잉태한다.
6. 사실 ‘밀회’는 안방극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밀애’(2002)를 버전 업 시켰다는 느낌도 난다. ‘밀애’가 중산층의 위선을 그려냈다면 ‘밀회’는 상류층의 타락을 그리고 있다.
7. ‘밀회’는 일단 성공적으로 출발한 듯 보인다. 출연자의 연기능력과 카메라워크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1965년 개봉된 장동휘 김지미 신성일 주연의 영화 ‘밀회’와 다를 바 없다. 재벌집 경비원으로 들어가 재벌가 후처와 눈이 맞은 줄거리가 65년판 ‘밀회’다.
9. ‘위험한 관계’가 욕망을 다루면서도 고전으로 남은 이유가 있다. 궁정문화의 배후에 도사린 상류층의 권력 지향과 이기주의를 문학이 고발한 것이다. 2014년 ‘밀회’는 상류사회의 타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반인들의 욕망은 거리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상류층 타락은 높은 담 안에 있어 설(說)은 있으나 목격이 쉽지 않다. 그걸 ‘밀회’가 보여주고 있다. ‘욕망 너머’의 것을 보는 재미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