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억압의 땅' 아프간서 부통령에 도전한 사라비

‘여성 억압의 땅' 아프간서 부통령에 도전한 사라비

기사승인 2014-04-02 00:23:00
[쿠키 지구촌] 히잡을 두른 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지난 30일(현지시간) 남부 칸다하르 경기장의 강단에 올랐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시작하자 청중들은 야유했다. 아프간엔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있었다. 이 여성은 오는 5일 열릴 대선의 유력후보 잘마이 라술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인 하비바 사라비 전 바미얀 주지사(57)였다. 여성 탄압으로 악명 높은 아프간에서 첫 여성 부통령에 도전한 사라비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프간은 1997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뒤 여성 인권이 급격히 악화됐다. 탈레반은 여성을 집 밖에서 일할 수 없도록 했고, 여자 아이들의 등교를 금지했다. 부르카(온 몸을 감싸는 옷)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여성의 공직 참여도 막는 등 여성을 철저히 억압했다.

2001년 11월 미국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사정이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여성 차별적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아프간 의회는 지난해 여성의 불복종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여권신장법안을 부결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012년 3월 8일자 보도에서 여성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국가로 아프간을 꼽기도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연합군이 완전 철수를 결정하면서 이 곳 여성들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히더 바르 연구원은 “탈레반 정권 축출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아프간의 여성 인권이 이미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단체들은 부통령 후보로 나선 사라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약사 출신인 사라비는 1990년대 여성교육과 난민 지원을 위한 지하 활동을 펼쳤다. 탈레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에서 문화교육부 장관, 여성장관을 역임했다. 2005년 아프간 사상 첫 여성 주지사를 지냈고 지난해 7월엔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이번 대선에선 여성의 교육권 신장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 대선에는 8명이 출사표를 냈다. 부통령 후보 중 여성은 총 3명이지만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라비가 유일하다. 사라비는 여성들과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 청년층의 표를 노리고 있다. 그는 “여성 유권자들에게 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해 그들 역시 국가의 일원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슬람 보수주의가 강한 남부 지역이 최대 걸림돌이다. 이 지역은 여성 차별이 심한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미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서방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열리는 첫 번째 선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 선두를 달리는 인물은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이다. 반탈레반 부족 연합체인 ‘북부동맹’을 이끌다 암살당한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최측근이다. 그 뒤를 아슈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이 바짝 쫓고 있고, 사라비와 손을 잡은 라술도 강력한 후보로 꼽힌다. 라술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형인 카윰 카르자이의 지지를 받고 있다. 1차 투표에서 특정 후보가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할 경우 표를 많이 얻은 2명이 5월 말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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