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병원장 변모(48)씨는 2011년 7월 서태지(본명 정현철·42·사진)씨와 건물 전체를 빌리는 임차 계약을 맺었다. 이른바 ‘서태지빌딩’으로 알려진 서울 논현동의 지상 6층 지하 3층짜리 건물이었다. 공시지가가 102억원이며, 시가는 230억여원으로 추정된다. 서태지씨는 2002년 해당 부지에 위치한 건물을 75억원 정도에 구입한 뒤 지금의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씨는 거액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지자 2012년 2월 건물의 일부인 2∼5층만 빌리기로 재계약을 했다. 임대차 기간은 8년, 보증금은 4억8000만원이었다. 서태지빌딩은 한 층당 면적이 374.13㎡(약 113평)에 이르는 큰 규모다. 변씨는 4개 층 월세와 관리비 등을 합쳐 월 4680만원을 서씨 측에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변씨는 2012년 9월부터 월세를 내지 않았다.
서씨는 2013년 2월 ‘건물을 비우고, 밀린 월세 등을 달라’며 변씨를 상대로 건물명도 소송을 냈다. 재판이 시작됐지만 변씨와 서씨 측의 주장은 달랐다. 변씨는 재판에서 “월세를 내지 못한 것은 서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변씨는 건물 2∼4층에서 비뇨기과 등 여러 병원을 운영했다. 변씨가 계약하기 이전에도 건물 2∼4층에는 정형외과가 입주해 있었다. 변씨는 5층에 불임연구소와 함께 추가로 진료시설을 마련했다. 5층은 당초 사무실로 쓰였던 곳이라 병원으로 운영하려면 용도 변경이 필요했다.
변씨는 “서씨가 건물 5층의 일부분(약 40평)을 사무실에서 병원으로 변경해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병원 영업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5층을 병원으로 사용하지 못해 생긴 영업 손실을 서씨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리모델링 비용 등 변씨가 주장한 손해배상액은 10억원에 달했다.
실제 변씨는 임대차 재계약 다음 달인 2012년 3월 서씨의 동의를 받은 후 ‘건물 5층 일부분의 용도를 병원으로 변경하겠다’는 신청서를 강남구청에 냈다. 개정된 장애인편의증진보장법에 따르면 사무실을 병원으로 바꾸려면 건물 입구에 장애인 접근로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서태지빌딩에는 장애인 접근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변씨는 장애인 접근로 설치를 요구했지만 서씨 측은 “장애인 접근로가 건물 미관을 해치고 1층 임대에 방해된다”며 공사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서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부장판사 강인철)는 “변씨가 월세를 내지 않았으니 건물을 넘기고 밀린 월세도 내야 한다”면서도 “서씨도 임차인의 병원 운영에 성실하게 협조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서씨 측이 건물 5층도 병원으로 사용될 것을 알고 계약한 이상 장애인 접근로 설치에 협조해야 했다고 봤다. 수천만원이 넘는 월세와 비교할 때 접근로 설치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든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접근로를 설치할 경우 건물 미관이 나빠진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또 서씨 측은 임대를 업으로 하고 있으니 접근로 설치 의무를 뒤늦게 알았더라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변씨가 나머지 2∼4층에서는 정상적으로 병원을 운영한 점을 볼 때 변씨가 주장한 손해배상액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에 따라 변씨는 건물 5층 일부에 대한 월세는 지급하지 않게 됐다. 변씨가 빌린 전체 면적의 약 9%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변씨가 이를 빼고도 2개월 이상 월세를 연체했으니 건물을 비워야 한다고 봤다. 변씨는 밀린 월세 19개월 치에서 보증금을 뺀 3억2800만원과 함께 계약 변경 당시 내야 했던 손해배상액 등 1억9300만원도 추가로 내게 됐다. 모두 5억2160여만원을 지급하게 돼 사실상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변씨는 또 건물을 비우지 않을 경우 매달 월세 4260만원을 내야 한다. 변씨는 아직 해당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중이다.
서태지컴퍼니 측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건물을 넘기라는 결론이 나온 이상 재판부 판결을 존중할 생각”이라며 “서씨는 건물 관리인이 아니어서 관리상 발생한 세세한 분쟁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해당 건물이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그동안 전기요금도 대납해 왔다”며 “장기간 월세를 받지 못한 서씨가 피해자”라고 덧붙였다. 국민일보는 변씨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나성원 문동성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