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에 또 불거진 의학계 ‘학위장사’… "말로만 근절 외치더니""

"솜방망이 처벌에 또 불거진 의학계 ‘학위장사’… "말로만 근절 외치더니""

기사승인 2014-04-09 20:34:01
[쿠키 사회] 유명 사립대 치과대학 교수들의 수억원대 ‘학위장사’ 의혹과 관련해 의료계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국민일보 4월 9일자 1면 참조) 교수들이 박사 학위를 따려는 개인병원 의사(개원의)들로부터 뒷돈을 받고 대신 논문을 작성해주거나 실험 진행을 해주는 행태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9년간 달라진 게 없었다”=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치과대학 교수 2명이 40여명에게 금품을 받고 논문을 대신 써주고 논문 심사에까지 참여해 학위를 받게 해줬다는 내용이다. 교수 1인당 2억2000만원씩 건네받은 혐의(배임수재)를 받고 있다.

이는 2005년 전북과 부산의 의대·치대·한의대에서 벌어졌던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원광대 전북대 우석대 교수 26명이 개원의에게 수업이나 실험에 참여하지 않도록 편의를 제공하거나 논문을 대필해주고 500만~2000만원씩 받아 챙겨 사법처리됐다. 같은 해 부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박사학위 이수과정 파트타임제 △대학별 연구부정 신고창구 개설 및 조사기구 설치 △논문 표절 방지를 위한 논문 종합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을 근절책으로 제시했다. 대학별 박사학위 과정 개선 노력을 대학종합평가에 반영하고 학위 부정 대학과 당사자에 대한 행정·재정적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핵심 정책으로 제시됐던 박사학위 이수과정 파트타임제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9일 “도입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정부 부처 내 회의자료만 남아 있다. 대학들이 시행하고 있는지 실태를 조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개원의들이 박사 과정을 제대로 밟을 시간이 없어 논문 대필 등 비리 유혹에 빠진다는 지적에 따라 파트타임으로 틈틈이 학위를 준비하게 한다는 취지였지만 유야무야된 것이다.

대학종합평가에 반영해 재정적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대학평가에서 연구윤리 위반과 관련해 불이익을 주는 평가 항목은 없다. 사안별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DB 구축도 제대로 안됐다. 교육부 측은 “현재 논문 DB가 운용되고 있지만 표절 등 학문윤리 위반을 가리는 기능은 없다”고 했다.

논문심사 과정도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지도교수의 전횡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위논문 심사위원은 석사 3명 이상, 박사 5명 이상이라고만 규정돼 있다. 외부 인사 참여 등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대부분 같은 학교 의·치대 교수들이 참여해 부정 논문을 제대로 걸러내기 어려운 구조다.

◇‘솜방망이’ 당국에 ‘철밥통’ 의사들=이런 사건을 저질러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점 역시 문제다. 원광대에 따르면 2005년 학위장사 사건에 연루됐던 교수 2명은 여전히 이 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건이 터진 직후 해임됐다가 2년 뒤 재임용됐다. 대학 관계자는 “(해임 이후) 학회 활동, 논문 실적과 질이 모범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북대도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당시 사건 연루자 1명이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연루자 대부분은 선고유예나 벌금형을 받아 교수직을 유지하거나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정하게 학위를 받은 게 적발돼도 의사면허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학 박사’라는 간판을 돈으로 사려다 ‘운 나쁘게’ 적발되더라도 그냥 간판만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비리를 저지른 교수 징계를 서로 미루는 모습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학위 취득과 관련해) 비리에 연루돼 의사면허가 박탈된 경우는 없다”며 “학위 문제와 실무는 무관한 부분이고 학위과정 문제는 교육부 소관”이라고 했다. 의대-수련의-전공의-전문의로 이어지는 실무과정과 학사-석사-박사의 학위과정은 별개로 운영되므로 학위과정에서 문제가 있어도 실무과정을 통해 획득한 자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윤리강령이 있긴 하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위 취소 권한은 대학 당국에 있고 의사면허는 복지부 소관”이라면서 “대학 자율화 흐름에 따라 정부가 대학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전수민 박세환 박요진 기자 yido@kmib.co.kr
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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