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왜 보험설계사는 산재보험가입에 거부감을 느낄까?

[Wide&deep] 왜 보험설계사는 산재보험가입에 거부감을 느낄까?

기사승인 2014-04-17 20:47:00
[쿠키 경제] 근로자가 봉급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고용보험 등 4대보험 가입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이들 보험은 각종 위험에 대한 대비와 미래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정부가 4대보험중 하나인 산재보험 가입의 문을 열어도 이를 외면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이들은 산재보험이 주는 실익이 없다고 한다. 산재와 상관없는 전문직 화이트칼라 직장인들도 아니다. 오히려 22일 열리는 국회 법사위원회가 이들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할까봐 지난 15일 8만여명이 반대서명을 통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바로 보험설계사다. 이들은 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차원에서 정부가 마련한 산재보험에 대해 뜨악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2008년 특수고용 산재특례제도가 발단=산재보험과 보험설계사간 미묘한 관계는 2008년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일은 하지만 신분상 근로자로서의 대접을 못받는 이른바 특수고용직종사자(특고)의 권익보호를 위해 2008년 7월 이들의 산재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특례제도를 실시했다. 대상은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등 4개 직종이다. 현재는 택배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 2개 직종이 추가됐다. 하지만 6년이 다 돼가는 동안 이들 특고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가 채 안된다. 사실상 정부의 제도안착이 실패한 것이다. 특히 전체 특고(44만여명)의 80% 가까이 되는 보험설계사(33만여명)들의 가입률은 겨우 8%를 웃도는 수준이다.

제도가 지지부진한 이유로는 ‘적용제외 신청’이라는 조항이 자리잡고 있다. 산재보험은 의무가입제도인데 특고가 ‘산재보험적용 제외를 신청’할 경우 보험가입을 피할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 의무가입과 선택가입이 혼재된 희한한 제도로 둔갑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한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은 최근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질병, 출산 등에 국한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개정안의 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17일 “2008년 특고의 산재보험 가입에 보험업계가 참여한 것은 이처럼 선택가입을 가능케 한 조항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정부는 ‘적용제외 신청’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이 제대로 안된다는 입장이고 보험업계는 그 조항 덕분에 제도의 출발에 협조했다는 뜻이다. 조항을 보는 정부와 업계간 잣대가 상이했던 것이다.

◇보험설계사는 다른 특고와 다르다?…정부와 업계의 불신=업계의 주장은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보험설계사는 다른 특고와 다르다”는 것이다. 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산재보험은 업무상 발생한 사고만 보장하는데 영업시간이나 장소선정이 자유로운 설계사들 특성상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또 레미콘 및 퀵서비스 기사들과 달리 업무 성격상 산업재해 위험도도 낮다. 한마디로 보험가입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의 경우 회사가 보험료를 내는 단체보험과 본인부담이 50%인 산재보험을 선택해 가입토록 하는데 현재 단체보험 비중이 생명보험업계의 경우 90%를 넘는 실정이다. 생명보험협회측은 “업무연관성 없이도 보험금이 나오는 단체보험의 혜택을 보고 있는데 산재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9개사의 생명보험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5.7%가 단체보험가입을 지지했다.

반면 정부는 업체의 이기심이 설계사들을 볼모로 잡아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용노동부 오복수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실제 조사해보면 산재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설계사들이 많다”며 “업계가 일부 대형 보험사 설계자들의 목소리를 마치 전체 입장처럼 여론화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오 과장은 “민간보험인 단체보험과 사회적 보험인 산재보험은 상호보완적 관계인데 단체보험을 들었으니 산재보험은 필요없다는 것은 자동차 보험 들었으니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업계는 과잉부담 편견 버리고, 정부는 실태조사 해야=양측의 주장은 타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자기보호적인 부분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먼저 업계가 주장하는 보험설계사의 특수성 이면에는 이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경우 미칠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산재보험 의무가입이 이뤄지면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다른 4대보험 적용 목소리가 커지고 노조 결성 등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 과장은 “업계는 산재보험 의무가입시 각종 비용발생으로 구조조정 등이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평균 업계 부담 보험료가 1인당 월 8400원밖에 안된다”고 꼬집었다.

정부 역시 업계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보다 개정안 추진에만 전력투구한다는 인상이 짙다. 보험 설계사를 대상으로 하는 실태조사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도 없다. 또 대형보험사들이 제도정착을 방해하고 있다는 정부 주장도 다소 과장됐다. 15일 반대서명에 참여한 설계사들은 보험업체가 아닌 대리점 소속이다.

보험연구원 안철경 부원장은 “단체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보험설계사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산재보험 의무가입을 시키고 정부의 실태조사와 그에 따른 후속 협상 등의 수순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고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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