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세월호가 국민들에게 준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일까?

[진도 여객선 침몰] 세월호가 국민들에게 준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일까?

기사승인 2014-04-20 19:07:00
[쿠키 사회]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에게 준 ‘대리 외상’(바이캐리어스 트라우마)은 어느 정도일까. 심리학자와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수몰되는 끔찍한 장면을 속수무책 지켜본 충격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첫 작업은 정부가 이제라도 사태 수습 능력을 보여주고 재난대응 시스템을 정비해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정신적 외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패닉에 빠진 부모들 “우리 아이도…”=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는 대개 40~50대다. 전문가들은 이들과 비슷한 연령층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상황, 오열하는 동년배를 지켜보다 보면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자동적으로 발동한다. ‘내 아이가 타고 있다면…’이란 생각을 이 연령층은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을지대 조성남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생면부지 사람들 때문에 눈물 흘리고 분노하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이 돼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죽어가는 과정이 생중계된 이번 참사는 공감 능력이 배가돼 직접 겪은 듯한 심리적 통증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험은 대단히 충격적이어서 장기 기억장치에 저장되며 평생 지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최태산 전국재난심리지원센터 연합회장(동신대 교수)은 “(사고를 직접 당하지 않은 학부모들로서도) 불안과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도 저런 사고를 당할 수 있겠구나’ ‘사고가 나도 구할 방법이 없겠구나’ 하며 막연했던 공포를 현실처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또래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연령층도 상황이 좋지 않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이모(29·여)씨는 “방안에 누웠다가 이 방에 물이 가득 차 질식하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아무리 훈련된 특수부대가 온다 해도 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상 이런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사람 10명 중 1명은 평생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바이벌 증후군, 트라우마 도미노=전문가들은 상당수 국민이 세월호 생존자의 정신적 외상과 비슷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형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통상 ‘서바이벌 증후군’을 겪는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진다. 극도의 무력감이나 자책감, 분노나 공격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서바이벌 증후군의 극단적인 사례는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돕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심리적 충격은 거의 실체에 가깝다”면서 “그 상황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희생자 가족)의 정신적 외상이 나의 상처가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구출된 아이들, 사망·실종자 가족 등 피해 당사자의 대리 외상이 주변으로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당사자→가족→친지·이웃 등으로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스트레스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대리 외상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면서 “단원고 교감 자살의 경우 다른 교사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빙빙’ 돌다보면 도미노 현상처럼 사회적 트라우마로 연결된다”고 했다.

◇침몰한 국가 신뢰 기반= 전문가들은 대리 외상을 입을 경우 ‘공포·무기력·분노→불안→불신’으로 이어지는 심리 변화를 겪게 된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현상은 국민적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국민적 불안감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이번 참사는 정부 위기관리 능력의 ‘밑천’을 전부 드러냈다.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종자·사망자 수를 수차례 번복하는 촌극을 빚었다. 고질적인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은 국가재난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고려대 의대 김정일 교수는 “커다란 대리 외상을 겪더라도 극복하면 더욱 성장한다는 ‘외상 후 성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참사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대증요법만으로 대처했다”며 “매번 타이밍을 놓쳐 피해를 키우고도 후속조치마저 제대로 안됐다”고 꼬집었다.

정신적 외상을 관리하는 체계도 시급하다. 직업의 특성상 대리 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처럼 체계적으로 접근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치료사의 경우 ‘디브리핑’ 과정이 있다. 심리치료를 하면서 겪게 되는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다른 상담자에게 얘기하면서 해소하는 것이다. 사건·사고를 현장에서 접하는 경찰관을 위해 경찰청은 ‘트라우마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동대 심리학과 신성만 교수는 “일반인의 경우 대리 외상을 다루는 전문적 준비나 지식이 부족해 상당히 오래 여파가 지속될 것”이라며 “정서적으로 탈진된 느낌이 들고 분노조절 장애, 우울감, 집중력 저하, 막연한 공포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황인호 기자 yido@kmib.co.kr
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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