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수학여행 학생들을 비롯해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났던 세월호는 ‘화물선’에 가까웠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과적 운항을 일삼으며 여객 수송보다 ‘돈이 되는’ 화물 운송에 열을 올려왔다. 고박(화물을 배에 고정시키는 것) 규정을 무시한 채 기준 중량을 넘어선 대형 차량을 싣고 비규격 컨테이너를 사용하며 화물운송 편의만 추구했다.
47년 전 제정된 항만법은 내항 여객선의 항만사용료 중 ‘화물료’를 전액 면제해주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화물료 한푼 안 내고 여객선의 옷을 입은 화물선을 운영해온 셈이다.
◇곳곳에 안전불감증=세월호는 인천∼제주를 오가며 수시로 고박 규정을 어겨왔다. 이 항로를 자주 이용한 화물차 기사 A씨는 24일 “차량과 적재물 총중량이 44t만을 넘지 않으면 도로교통법상 과적 운행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세월호 차량 선적 기준 25t은 화물차 기사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25t을 초과하는 화물을 싣고 들어가도 청해진해운에서 규제하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최근에는 변압기나 발전기처럼 특수화물 운송에만 사용되는 고중량 대형 트레일러도 자주 싣곤 했다”고 말했다.
이런 트레일러들은 차량 무게만 25t 안팎이다. 따라서 한국선급에 신고한 뒤 고박지침을 새로 받아 완벽하게 선박에 고정시켜야 한다. 청해진해운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결국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대형 트레일러들이 잇따라 쓰러지며 피해를 키웠다.
가로 길이가 8피트에 불과한 비규격 컨테이너를 많이 사용한 점도 안정성을 위협했다. 화물을 싣는 선박은 모두 규격 컨테이너에 맞춘 고박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런 비규격 컨테이너는 네 귀퉁이에 달린 콘(cone)을 갑판에 제대로 결박할 수 없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청해진해운은 유독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쓰지 않고 8∼10피트짜리를 사용했다”면서 “이를 컨테이너로 봐야 하는지, 박스로 봐야 하는지 기준을 잡기가 애매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양대 산업경영공학 이영해 교수는 “배는 표준화돼 있는데 비표준 컨테이너를 쓰면 제대로 고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물료 전액 면제=세월호 같은 연안여객선이 화물을 아무리 많이 운송해도 항만사용료 중 ‘화물료’를 내지 않는다. 과거 도서 지역에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내항 여객선에 화물료를 면제해준 항만법 시행령 때문이다.
항만을 드나드는 모든 배는 항만시설 사용료를 내야 한다. 선박료, 화물료, 여객터미널 이용료, 항만시설 전용 사용료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화물료는 다시 화물 입출항료와 화물 체화료(보관·처리 비용) 등으로 구성된다. 인천항 내항선 화물료는 컨테이너가 20피트짜리 1개당 1140원, 일반화물은 t당 85원, 기계하역 화물은 t당 50원 등이다.
하지만 세월호를 비롯한 내항 여객선은 1967년 제정된 항만법 시행령에 따라 화물료를 100% 면제받는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컨테이너만 2012년 1만5487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지난해 3만928TEU, 올 들어 9428TEU를 실었다. 항만공사가 화물 신고를 받기 시작한 2012년부터 이달까지 청해진해운이 ‘절약’한 컨테이너 화물료는 6366만원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내항 여객선이 수송하는 화물은 대부분 도서지역 생필품이기 때문에 화물을 받으면 원가가 늘어난다”며 “국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화물료를 면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만법이 워낙 오래전에 제정돼 화물료 면제 조항이 언제 고시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내항 여객선의 일반 화물 적재량조차 집계가 되지 않고 있다. 화물료를 내지 않다보니 화물량을 공식 집계하는 기관이 없어 사실상 선사 마음대로 화물을 싣고 있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연안 여객선은 화물요금 부과 대상이 아니어서 2011년까지 화물 신고를 아예 받지 않았다”며 “물동량 현황 파악, 유치 실적 경쟁 때문에 2012년부터 선사에 협조를 구해 사후 화물 신고를 받고 있지만 청해진해운의 경우 아직까지 컨테이너 적재량만 신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전수민 황인호 조성은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