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비정하고 비겁한 선장… 검찰 수사로 재구성한 상황

[세월호 침몰 참사] 비정하고 비겁한 선장… 검찰 수사로 재구성한 상황

기사승인 2014-05-16 00:41:00
[쿠키 사회] 세월호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은 무능하고 비겁했다. 침몰하는 배 안에 승객과 다친 동료를 버려둔 채 자신들만 탈출한 이유에 대해 이들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비정한 이들에게 승객 수백명의 생사가 하릴없이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 결과 세월호는 지난달 16일 오전 8시4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방향을 틀다 급속히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급격한 변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선박은 사고 해역을 항해해 본 경험이 없는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와 조타수 조모(55)씨가 운전을 맡고 있었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초 세월호 조타를 맡았을 때도 팔미도 부근에서 조타 조작 사고를 냈던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선장 이준석(69)씨는 ‘미숙한’ 이들에게 항해를 맡긴 채 침실에 머물고 있었다. 항해사 박씨는 1차 140도, 2차 145도로 5도씩 변침하라고 조씨에게 지시했지만, 조씨는 거센 조류 때문에 원하는 대로 방향을 틀지 못했고, 당황한 나머지 15도 이상의 큰 각도로 배를 돌렸다. 합수부 관계자는 “명백히 기계적 고장은 없었다. 조타 미숙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선장 이씨와 1등 항해사 강모(42)씨, 2등 항해사 김모(46)씨 등은 8시52분쯤 상황 파악을 위해 조타실로 모였다. 이들은 배의 균형을 잡는 힐링펌프가 작동되지 않자 곧 침몰할 것으로 인식하고 8시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구조 요청을 했다. 선장은 3분 뒤 항해사 김씨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도록 지시했지만 김씨가 방송장비 조작법을 몰라 방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씨는 사무장 양대홍(45)씨에게 침몰 상황은 알려주지 않은 채 ‘선내 대기’ 안내방송을 하도록 했다. 사고를 낸 3등 항해사 박씨는 당황해서 조타실 한쪽에서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던 기관장 박모(54)씨는 선박 엔진을 완전히 정지시킨 뒤 직통 전화로 선박 맨 아래 층에 있는 기관실에 연락해 탈출을 지시했다. 박씨와 기관부 직원들은 아무런 구호 조치 없이 오전 9시6분부터 선박 3층 복도에 모여 구조선이 오기만 기다렸다.

조타실에 있던 선장 이씨 등은 둘라에이스호가 9시13분쯤 접근하며 “승객들이 탈출하면 구조하겠다”는 교신을 보내고, 진도연안 VTS가 9시24분 “승객들이 구명동의와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 바란다”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등의 지시를 내렸지만 묵살했다. 이들은 3층 객실 안내데스크에 있던 매니저 박지영씨 등이 무전기를 통해 선내 대기 중인 승객들에 대한 추가 조치 요청을 수차례 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인 선박 1층 D데크까지 물에 잠기자 곧 전복될 것을 직감하고 탈출을 감행했다.

9시37분부터는 진도연안 VTS로부터의 교신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합수부는 이 때부터를 살인 행위의 착수 시점으로 보고 있다. 교신을 끊은 시점에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승객들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범의(犯意)가 명백히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선장 등 조타실에 있던 선원 8명은 9시46분 갑판으로 나와 해경 123호 경비정을 타고 탈출했다. 배는 10시17분쯤 108.1도로 전복됐으며, 그 시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발송됐다. 그 때까지 승객들은 선장이 떠난 선내에서 안내 방송에 따라 대기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목포=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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