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넘어 현역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케르 카시야스(33·레알 마드리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지난 월드컵까지 15경기에서 10골만을 내준 그가 2경기에서 7골을 허용했고, ‘무적함대’라 불리는 팀은 16강 탈락이 확정됐다.
스페인(FIFA 랭킹 1위)은 1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칠레(14위)와의 2014 브라질 월드캅 조별리그 B조 2차전에서 0대2로 졌다. 2패째를 당한 스페인은 남은 호주와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16강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카시야스는 이날도 어김없이 스페인의 수문장으로 나섰다. 카시야스에게는 의미가 깊었다. 월드컵 본선 통산 17번째 경기로 스페인 국가대표 최다 출장 기록을 쓰게 된 것이다. 이전 기록은 안도니 수비사레타(16경기)였다. 전체 A매치(국가대표 간 경기)로는 156번째였다.
카시야스는 앞서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 굴욕(1대5패)과 함께 대기록이 좌절됐다. 이전 경기까지 월드컵 본선 433분 연속 무실점 행진을 기록 중이던 카시야스는 네덜란드 전만 무실점으로 막으면 월터 젱가(이탈리아)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세운 517분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 44분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카시야스의 기록은 477분에서 멈췄다. 여기에 이후 내리 4골을 더 허용했다.
카시야스에게 칠레 전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침체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면서 자신도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엄했다.
전반 20분 카시야스는 문전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에두아르도 바르가스(발렌시아)를 태클하려다 순간 바르가스를 놓쳤고, 결국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앞서 14분 칠레 골키퍼 브라보는 스페인 사비 알론소의 결정적인 찬스를 선방했기 때문에 더욱 체면이 구겨졌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전반 43분에는 알렉시스 산체스(FC바르셀로나)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쳐냈지만 공이 하필 아랑기스의 발 앞에 떨어졌다. 애써 해낸 선방이 추가 실점의 빌미가 돼버렸다.
카시야스는 우리나라 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스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한국과의 승부차기 당시 순서를 맞바꿀 때마다 골키퍼 이운재에게 ‘동병상련의 악수’를 청하는 모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카시야스는 4년 뒤면 37세가 된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 본선 경기다.
‘영웅’의 마지막 무대는 잔인하리만치 초라하게 흘러가고 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