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2’)이 돌연 개봉일을 일주일 앞당기자 영화계가 혼란에 빠졌다. ‘혹성탈출’을 피해서 한주 앞서 개봉 계획을 세웠던 영화들은 폭격을 맞은 상황이 됐다. 엄청난 규모의 상영관을 점유할 대작의 개봉 계획이 수정되면서 경쟁작의 상영 스크린수가 축소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영화계 강력반발 “충격을 넘어 분노”=혹성탈출은 당초 오는 16일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4일 개봉일을 10일로 앞당겼다. 이에 대해 ‘혹성탈출’의 홍보사 올댓시네마측은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많은 영화라 심의 일정 등을 고려해 개봉일을 16일로 잡았던 것인데 심의가 생각보다 이른 지난 3일에 나와서 개봉일을 앞당기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은 “충격을 넘어 분노”라며 “상도의를 무시한 변칙적 개봉”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제협은 “이로 인해 한국영화 제작사는 물론 중소 영화사들이 깊은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10일 개봉예정인 할리우드 영화 ‘사보타지’의 수입사인 메인타이틀픽쳐스의 이창언 대표는 “이는 분명히 영화시장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상황이며 더불어 관객들에게 폭넓은 영화 선택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거대 자본의 논리로 중소 영화사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러한 변칙 개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성 주지훈 이광수가 주연을 맡은 한국영화 ‘좋은 친구들’ 역시 10일 개봉 예정이라 ‘혹성탈출’의 유탄을 맞게 됐다. 또 지난 3일 개봉한 정우성 이범수 주연의 ‘신의 한수’ 역시 ‘혹성탈출’과 2주의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영화계 관행 깨는 행위=영화는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어가는 작업이다. 적지 않은 마케팅 비용을 들여 개봉일정을 잡는다. 영화계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원만한 배급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배급사 및 제작사들은 관례적으로 수개월 또는 1년 전부터 배급하는 영화에 대한 라인업을 공유한다. 각 회사별 개봉 예정 영화의 라인업을 바탕으로 배급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영화의 후반작업 및 광고비의 집행 등 막대한 경비를 조달하면서 배급준비를 한다.
이러한 관례로 볼 때 누군가 개봉계획을 급작스럽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변경할 경우, 배급계획에 대한 심각한 혼란과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급작스럽게 개봉일을 변경한 것이다. 제협은 “이는 상도의에 맞지 않는 것으로서 영화시장의 기본질서를 크게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받을 피해는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제협은 “따라서 이것은 내가 먼저 살고 남을 죽이려 하는 이기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다”며 “영화계에서 변칙개봉이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것을 묵과할 경우 한국영화 유통질서에 큰 위기가 올 것임을 본 협회는 심히 우려한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