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교통카드, 출입카드…. 그동안 수많은 카드를 봤지만 이것 참 신선합니다. ‘횡단보도 카드’라니요.
이 낯선 카드정책은 2일 한 정보통신 관련 사이트에서 소개됐습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시행 중인 교통시스템이라고 하네요. 카드의 용도는 하나입니다.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을 늘려주는 거죠.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발급되는 특별한 카드입니다.
유튜브에는 싱가포르 교통당국이 만든 사용안내 영상도 올랐습니다. 간단합니다. 버스나 전철을 탈 때처럼 신호등에 설치된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횡단보도 길이에 따라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최소 3초에서 최대 13초까지 늘어난다는데 평균 6초 정도 더 ‘플러스’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드의 정식 명칭은 ‘그린 맨 플러스(The Green Man Plus)’입니다.
싱가포르는 2009년부터 이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처음에는 5개의 횡단보도에서 시작됐죠.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장소가 아니라 이용자에 따라서 횡단보도 시간이 달라지는 아주 스마트한 방법이니까요. 이 특별한 신호등은 점점 늘어나 250개 가까이 설치 됐습니다. 싱가포르 교통당국은 내년까지 495개의 그린 맨 플러스 신호등을 만들 계획입니다. 특히 고령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늘려가고 있다고 하네요.
“횡단보도 시간이 너무 짧다”는 민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제기됩니다. 서울시가 소개한 ‘교통신호등 운영방식’에 따르면 초록불이 켜지는 시간은 보행 진입시간인 7초에 횡단보도 1m당 1초씩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 길이가 30m일 경우 7초에 30초가 더해져서 37초 동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거죠. 어린이·노약자·장애인 보호구역이나 보행자가 많은 곳에선 조금씩 다르게 적용되지만 기본적으로 1초당 1m를 걸어가야 합니다. 어쩐지 횡단보도만 보면 발걸음이 빨라지더라고요.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처럼 저출산·고령화로 고민이 많은 국가입니다. 그린 맨 플러스 정책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 중 하나였습니다. 싱가포르의 교통당국 대변인은 “신호등 이용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었던 것이 그린 맨 플러스 정책을 시행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게 진짜 선진국”이라며 감탄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세심한 배려를 느끼는 것, 이런 게 진정한 복지정책 아닐까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