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시인 제페토를 아시나요? 2010년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재된 기사 댓글에 시를 쓰고 있는 네티즌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적은 96개의 댓글 시는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잉꼬 부부, 알고 보니 유치원 때 한 사진에 포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제이슨과 제시카 부부는 대학생 신입생 때 처음 만났죠. 두 사람은 곧 캠퍼스 커플로 발전했고 앨범을 보던 중 유치원 시절 같은 사진에 찍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제페토는 이렇게 댓글을 남겼습니다.
‘보도블록에/ 엎드려 귀를 대자/ 멀리서/ 그 사람/ 오는 소리 들린다’라고요.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는 설렘을 표현한 겁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라는 사진기사 아래에는 ‘여름은 오래가지 못했고/ 가을의 보폭은 넓었습니다/ 성큼, 가을이네요/ 그간 고생한 선풍기를/ 토닥여줘야겠습니다/ 애썼어/ 고마워’라고 썼네요. 여름 동안 고생한 선풍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NYT기고문 ‘한국 학생, 공부 진지해도 눈빛 죽어있어’라는 기사에서는 댓글 시로 대한민국 청소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비쳤습니다.
‘나비도 아니면서/ 허공에 몸을 띄우는 아이들/ 아래로/ 아래로/ 세상은 까마득히 높아/ 결정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누구도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다/ 나무도 아니면서/ 시키는 대로 꼼짝 않던 아이들은/ 반딧불이 정도면 족한데/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죽건 말건 어른들은/ 이 정도로는 어림이 없고/ 아래로/ 아래로/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늙은이 같은 말을 남긴 것도 같은데/ 아래로/ 아래로/ 뚝, 하고/ 울음은 거기에서 그쳐진다.’
제페토의 댓글 시의 주제는 쪽방촌의 여름, 노인, 세월호 추모 집회, 4대강, 서민 등으로 다양합니다. 특이한 점은 제목이 따로 없다는 겁니다. 기사 제목이 곧 시 제목인거죠.
네티즌들은 “몇 년 전에 보고 그리웠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구나” “댓글 모아서 시집 한편 내주세요” “제페토님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하다” “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도 몇 천개의 기사가 쏟아집니다. 비방, 욕설 등의 악성 댓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죠.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제페토의 댓글도 있습니다. “댓글 보러 왔습니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나 봅니다.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