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드카펫=에로영화 이야기?” 과연 그게 전부일까

[리뷰] “레드카펫=에로영화 이야기?” 과연 그게 전부일까

기사승인 2014-10-17 14:35:55
사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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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19금, 노출, 음란….’

자극적인 수식어가 마구 붙는다. 예고편에는 민망한 장면들과 상상을 자극하는 말들이 곳곳에 편집됐다. 개봉을 앞두고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상업영화 홍보의 한계라 하면 할 말은 없다. 시선 끌기에 이보다 더 좋은 요소가 있을까. 에로영화를 찍는 사람들을 소재로 했기에 필연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 ‘레드카펫’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 정우는 10년차 에로영화 전문 감독이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능글맞은 구석도 있지만 알고 보면 진중한 성격을 지닌 인물. 배우 윤계상(35)이 연기했다. 그간 주로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선택했던 그에겐 조금 색다른 도전이다. 무게감은 조금 덜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나름의 고뇌를 그려내야 했다.

극중 정우는 함께 영화를 찍는 동료들 진환(오정세), 준수(조달환) 대윤(황찬성)과 있을 땐 밝고 장난기가 많다. 하지만 홀로 자신이 사는 옥탑방에 들어서면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어딘지 어둡고 씁쓸하다. 자신이 써놓은 수북한 시나리오들을 가만히 넘겨볼 뿐이다. 장르는 에로가 아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은수(고준희)가 찾아온다. 전세사기를 당해 정우의 집으로 잘못 들어오게 된 은수는 갈 곳이 없다. 정우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 얹혀사는 수밖에. 20년 전 아역배우로 활동했지만 화려한 시절은 잠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국에 살다 한참 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그녀를 더 이상 알아봐주는 이는 없었다. 어머니 유지에 따라 다시 배우로 성공하길 꿈꾸지만 전부 원점에서 시작해야했다.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정우는 은수가 배우로서 재기하는 걸 물신양면으로 돕는다. 하지만 본인 직업은 차마 밝히지 못한다. 영화를 좋아해 일을 시작했지만 방향이 좀 틀어졌다. 정우는 부모에게도 직업을 숨긴다. 독립영화 감독이라고 둘러대며 부모와의 대화를 애써 피한다.

에로영화 감독이라고 무시당하는 일은 다반수다. 감독뿐이랴. 함께 영화를 찍는 배우들도 일상적으로 수모를 겪는다. 이들의 꿈은 모두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찍는 것이다.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말하지 못하는 게 점점 버겁다.

어쩌면 뻔한 내용과 전개다. 초반 에로영화 촬영 현장을 그린 장면은 다소 낯 뜨겁고 생경하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공감을 이끌어낸다.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범수 감독에게 답이 있다. 영화는 에로영화계에 몸담았던 그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정우가 실제 박 감독을 투영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에로영화계의 재밌는 뒷얘기들도 거의 박 감독 경험담이다.

‘레드카펫’은 박 감독이 내놓은 첫 상업영화다. 그는 개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독 감회가 남달라보였다. 기자간담회 역시 그에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모인 취재진에게 연신 고마움을 전하며 몇 번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영화가 부모님께 처음 보여드리는 작품”이라고 말할 때 그랬다.

간담회에서 오정세는 작품을 한 마디로 “가슴 따뜻한 야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야하고 웃기지만 그렇다고 야하고 웃기기만 하진 않다고 했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에겐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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