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은 온통 하늘빛으로 가득했다. 14년 전 첫 단독 콘서트를 연상케 했다. 당시에도 공연은 이곳에서 열렸다. 그때의 팬들 표정도 이날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지오디(god) 다섯 멤버와 팬들의 나이만 조금씩 더 들었을 뿐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이제 ‘소녀팬’이라 불리기는 좀 민망하다. 하지만 팬들은 기꺼이 하늘색 풍선을 다시 들었다. 머리엔 하늘색 야광 머리띠를 손에는 야광봉을 쥐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오디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날이 어둑해지자 무대를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열렸다. 그 뒤엔 긴장한 얼굴의 다섯 남자들이 서있었다.
‘지오디 15주년 앙코르 콘서트(god 15th Anniversary Reunion Concert-Encore)’는 화려하게 막을 열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시작해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투어를 마무리하는 공연이었다. 신나는 댄스곡 ‘프라이데이 나이트(Friday Night)’가 울려 퍼지며 공연은 시작됐다.
‘관찰’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까지 쉼 없이 이어진 뒤에야 멤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팬들에 인사를 건넸다. 인사말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지오디입니다.” 4만여 관중은 뜨거운 환호로 화답했다.
국민그룹의 힘일까. 이어진 곡들은 대부분 익숙했다. ‘애수’ ‘니가 필요해’ ‘돌아와줘’ 등 지오디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시절 불렀던 노래들이다. 최근 발매된 8집 수록곡 ‘난 좋아’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부르며 한 숨 돌린 뒤 ‘레전드 무대’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지오디의 최고 히트곡들을 모아 꾸민 무대였다. ‘어머님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거짓말’ ‘길’ ‘보통날’. 제목만 들어도 또 문득 추억에 잠기고 만다.
지오디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가족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나이든 스타와 팬은 어느새 인생의 동반자가 돼 있었다. 공연 중간 중간 둘러본 팬들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한 없이 즐겁고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 그 한 명 한 명의 미소로 공연은 의미를 갖는다.
지오디는 ‘하늘색 약속’ ‘촛불 하나’ 등으로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몇 년간 팀을 떠났던 멤버 윤계상의 그간 마음을 담은 곡 ‘바람’도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했다. 머리에서 지워내려 몸부림 친 기억들이 바람이 되어 다시 자신을 안아줬다는 내용의 곡이다.
앞서 윤계상은 “요즘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산다”며 “멤버들을 다시 만나 함께 연습하고 앨범을 준비하고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요즘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노래로 눈빛으로 진심을 전했고 그렇게 모두는 또 다시 화해했다.
지오디와 팬들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 ‘하늘색 풍선’이 어김없이 대미를 장식했다. 지오디의 귀환을 알린 곡 ‘미운오리 새끼’도 빠질 수 없었다. 팬들은 하늘색 풍선을 흔들며 노래를 내내 따라 불렀다. 멤버들도 끝까지 무대 곳곳을 누볐다. 팬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3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던가. 흐르는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데니 안은 끝인사에서 팬들에게 “너무 잘 자라줘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데니가 이어 “우리를 기다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자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된 ‘큰 오빠’ 박준형도 어린 아이처럼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무한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손호영은 씩씩하게 인사했다.
“개개인의 각자 삶 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내년이 되겠죠? 저희와 함께 웃는 모습으로 다시 공연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