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신삥’들과 ‘워킹맘’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미생’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직장인의 공감을 얻으며 입소문을 탄 미생은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다 지난달 31일 5회 방영분에서 평균 시청률 4.0%, 최고 시청률 6.0%(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를 달성했습니다.
미생은 5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가해지는 직장 내 성차별을 비중 있게 담았습니다. 인턴들 중 유일한 여성이면서 독보적인 에이스였던 안영이(강소라 분)는 일명 ‘개저씨’들이 모인 자원팀에 배치되면서 ‘미운 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더구나 안영이는 4회에서 부당함에 눈을 감기보다 양심을 택했습니다. 안영이는 자신의 팀이 저지는 잘못을 장그래(임시완 분)를 통해 영업팀에 알렸고, 이 일로 팀에서 완전히 찍혔습니다.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 과장은 노골적으로 쏘아붙입니다. “BL건 네가 말했다면서? 말했으면 사죄의 뜻으로 조용히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제가 말했습니다?’ 장난하냐? 그러면 달라 보이나?”라고요. 그는 이어 “이래서 내가 여자를 안 믿는다고 하는 거다. 넌 회의에 낄 필요도 없어. 자리에 돌아가. 가라고”라고 소리치며 쫓아냅니다.
직속 선배인 하 대리는 한 술 더 뜹니다. 그는 안영이를 향해 “여자는 이래서 안 돼” “그걸 아는 놈이 그딴 짓을 해” “본처가 남의 집에 가서 첩질하고 나면 이런 기분이라더라” 등의 막말을 내뱉습니다. 드라마에 그려진 하 대리의 모습은 ‘병적’이라고 할만했죠.
출산휴가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도 그려졌습니다. 한 여직원이 임신한 몸으로 철야근무를 마다치 않다 쓰러지자 자원팀 직원들은 “뭐? 임신? 대체 애를 몇이나 낳는 거야” “첫째랑 둘째 낳았을 때도 우리가 얼마나 배려를 해 줬냐” “진짜 여자들이 문자”라며 “기껏 교육 시켜놓으면 남편에, 결혼에, 아기에, 그것도 아니면 눈물 바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게 다 여자가 의리가 없어서 그렇다” 등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냅니다.
압권은 마 부장입니다. 그는 영업팀과 자원팀 합동 회의에서 과거 자신이 저지른 성추행 문제가 거론되자 “그게 왜 성희롱이야. 파인 옷 입고 온 그 여자가 잘못이지. ‘숙일 때마다 그렇게 가릴 거면 뭐하러 그런 옷 입고 왔니. 그냥 다 보이게 둬’라고 말한 게 성희롱이야?” “이놈의 기센 여자들 등쌀에 살 수가 없어”라고 뻔뻔하게 소리칩니다. 뒤이어 가장 힘없는 안영이에게 “네가 말해봐. 그게 성희롱이야? 성추행이야? 왜 말을 못해?”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하죠. 이에 안영이는 “듣는 사람이 성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힙니다. 이것 역시 드라마이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선 차장(신은정 분)은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안영이에게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워킹맘은 어려워. 워킹맘은 어디서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죄인. 결혼하지 마. 그게 속편해”라고 조언합니다. 선 차장은 원인터내셔널 여사원들이 선망하는 롤모델입니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동기인 오성식 과장(이성민 분)보다 빨리 승진하기까지 했죠. 그런 그가 사무실에서 한 번 더 “안영이씨 일 계속 하려면 결혼 하지 마”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덴 이유가 있습니다.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워킹맘’에 비애도 선 차장을 통해 그려진 겁니다. 선 차장은 일과 육아,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답이 없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하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역설적인 대사를 남겨 가슴을 울렸습니다. 아침마다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길 때 아이는 늘 엄마의 뒷모습만 바라봤다는 것을 알게 된 선 차장은 “매일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엄마의 뒷모습을”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 차장이 눈물을 흘리자 이 땅의 워킹맘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들은 “왜 사람들은 자기 어머니와 딸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할까” “회사일 마치고 돌아와 아이 재우고 빨래 개고 설거지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내 얘기라서 보기 너무 불편하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결혼하는 게 무서워졌다” “교사와 공무원이 되려 기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 “미생을 보다보니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등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 네티즌은 미생을 보다가 그동안 행해온 실수를 뒤늦게 깨닫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걱정된다면, 또 직장 내 성 차별이 구시대적인 마인드라고 여긴다면 자기 자신부터 자원팀의 마 부장, 정 과장, 하 대리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