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차행전 부장판사)는 이모(사망 당시 17세)군의 부모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군은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호프집에서 일하던 친구 대신 나흘 동안 시급 5000원의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군은 출근 첫날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을 다녀오던 중 승용차와 충돌해 숨졌다.
사고가 나자 호프집 업주는 원래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군의 친구에게 허락 없이 무면허인 이군을 일하도록 했다는 내용의 ‘시말서’를 쓰게 했다.
이군의 부모는 공단 측에 산재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군을 호프집에서 고용한 근로자로 볼 수 없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는 무면허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군이 업주로부터 직접 사업장에 채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더라도 업주로부터 휴가기간 근무할 사람의 채용을 위임받은 그의 친구로부터 채용됐다고 봄이 상당하기 때문에 묵시적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군 친구가 작성한 시말서에 대해 “작성 시점이나 경위를 고려할 때 업주의 강요나 협박으로 진실과 다르게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군의 대체근무 사실을 업주가 알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무면허 운전이기는 했어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호프집 업주가 무면허 운전을 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고, 오토바이 열쇠를 카운터 옆에 걸어두는 등 무면허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묵인한 이상 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 있는 업무수행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사고가 오로지 이군의 무면허 운전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는 이상 무면허 운전을 했다고 해서 유족에 대한 공단의 보상책임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