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에서였다. 푸른빛에 휩싸여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리모콘을 멈추게 했다. 순하고 선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소년이 어느덧 성년이 됐다. 18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현우(21)는 어엿한 배우로 크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기술자들’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인터뷰 자리였다. 늘 바른 이미지의 역할만 맡았던 이현우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나쁜’ 연기에 도전했다. 지능적인 금고털이 지혁(김우빈)을 도와 서버해킹을 담당하는 종배라는 캐릭터다. 극중 종배는 담배를 피고 욕도 한다. 이현우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반된 설정이다. 그럼에도 이현우는 배우로서 과감한 도전을 했다.
“전에는 너무 밝고 깨끗한 이미지만 있었잖아요. 배역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한정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 안에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종배 캐릭터를 통해서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에 좀 더 다른 매력을 얹어서 보여 드리면 새롭겠구나’라는 생각이었죠.”
대화를 나누면서 내심 놀라웠다. 자신의 직업과 출연한 작품에 대한 생각이 어느 배우 못지않게 깊었다. 나부터도 아직까지 그를 아역 때 이미지로 보고 있진 않았나라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기술자들’ 얘기를 꺼내자 그는 “아쉽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이어 자신의 연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이현우는 “저도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재밌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며 “사람들은 눈치 못 챌 수도 있지만 제 귀에는 곳곳의 대사가 거슬리게 들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목소리 톤도 너무 아쉬웠다”며 “아직 목소리가 가다듬어지지 않았는데, 워낙 미성이고 얇다보니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떠버리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고백했다.
홍보를 위한 자리였는데 이현우는 아쉬웠던 점을 줄줄이 얘기했다. “담배 피는 장면을 열심히 찍었는데 처음 해본 거라 어색하게 나왔더라”며 촬영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워낙 김우빈이 부각된 작품이라 분량이 너무 적었다고 언급하자 “개인적으로 그 부분도 아쉽긴 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결국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였느냐”고 물으며 화제를 돌렸을 정도다.
배우로 사는 얘기를 한참 하다 보니 학생 이현우의 삶도 궁금해졌다.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학생 신분인 연예인들의 고충이다. 이현우는 “중·고등학교 때는 ‘저는 공부도 열심히 할 거고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쉽지 않더라”며 “한 쪽에 치중하면 한 쪽에 소홀해지는 면이 분명 있지만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엔 ‘기술자들’과 차기작 ‘연평해전’ 촬영까지 이어져 학교에 출석하기 쉽진 않다며 웃었다.
“작년에는 학교에 참 많이 나갔는데, 동기들과 같이 수업 들으면서 과제하고 리포트 준비하고 발표하는 게 재밌었어요. 교양수업 같은 경우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이 알아보기도 하는데 그것도 처음 볼 때나 그래요. 이런 얘기해도 되나 싶지만 피곤한 날엔 뒷자리 가서 잠도 자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요. 그래도 열심히 듣는 수업이 많아요(웃음).”
학교 얘기엔 영락없는 20대 초반 대학생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 배우에 대한 깊은 생각을 얘기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마지막 질문은 다시 돌아왔다. 본인이 그렇게 애정을 쏟고 있는 배우 인생을 어떻게 걸어가고 싶은지. 왠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늘 드렸던 말씀인데요.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좋은 배우, 인간 이현우로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 친구 괜찮네’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으면…. 이현우라는 사람 자체로만 봤을 때는 그냥 좋은 애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