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36)는 자신이 출연하고 연출한 영화 ‘허삼관’ 개봉을 앞두고 “빚진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배우로 먼저 활동해 신인감독으로서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게 다 “배우 하정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2일 서울 관철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팬들이 감독으로 변신한 하정우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부응할 수 있는 감독이 됐으면 좋겠다”며 “어떻게 보면 감독 하정우가 배우 하정우에게 빚진 것”이라고 웃었다.
하정우는 처음 ‘허삼관’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40세가 넘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말이다. 결국 판권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아 그때까지 못 기다린다는 제작사 대표의 말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하기 위해 16년간 판권을 가지고 있던 대표의 한을 풀어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하정우는 배우로서 출연을 결정한 후 ‘허삼관’ 연출 제안을 받았다. 캐스팅이 끝날 때까지 연출이 정해지지 않았고, 친한 감독들에게 부탁했지만 스케줄이 엇갈린 탓이다. 그런데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신기하게 가슴이 뛰었다”며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로 칸영화제에 초청 받았을 때,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던 ‘추격자’(감독 나홍진)가 흥행했을 때 느낀 기분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영화는 가진 것 하나 없고 뒤끝만 넘치는 허삼관이 절세미녀 아내와 세 아들을 둘러싸고 일생일대 위기를 맞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러 감독들이 각색을 시도했지만 어려워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정우는 원작 허삼관 매혈기와 7개 버전의 시나리오를 참고해 직접 각색했다. “어려웠다”면서도 “스태프들의 환성적인 팀워크로 개봉까지 하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특히 그는 극중 아내 허옥란 역에 하지원을 섭외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옷이 아닌 것 같다”며 고사한 하지원에게 “처음부터 허옥란은 오직 하지원뿐이었다”고 설득했다. 반신반의한 하지원도 하정우의 말에 믿음이 갔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MBC 드라마 ‘기황후’ 촬영으로 영화 준비가 빠듯한 하지원을 위해 잡지 ‘월간 하지원’을 만들어 선물했다. 잡지에는 영화 제작기, 허옥란 캐릭터 설명 등이 담겨 있었다. 하지원은 “월간 하지원 잡지 표지는 늘 나였다”며 “배우와 연출을 동시에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굉장히 영리하게 잘 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하정우가 “허삼관에 모든 걸 쏟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 하정우의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을 전망이다. 그는 “‘허삼관’ 이후 3년 동안은 연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우로서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마음도 있단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도 내 꿈은 세계를 재패하는 것”이라며 “‘동물처럼 내 본능에 충실하며 원하는 걸 하자’는 주의”라고 말했다.
도전하는 걸 즐긴다는 하정우. 언제 마음이 바뀌어 연출을 또 맡을지 모르는 일이다.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