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위기의 대한민국 성우들, 그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쿡기자] 위기의 대한민국 성우들, 그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기사승인 2015-02-25 10:31: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성우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전 ‘목소리의 마술사’라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얼굴도 보이지 않으면서 목소리 연기 하나로 각종 콘텐츠의 맛과 경쟁력을 한껏 살려주는 그들이기에 감히 ‘마술사’라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최근 이 ‘목소리의 마술사’들이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방송국 PD나 애니메이션 감독 등 제작자들이 인기나 흥행을 위해 내레이션에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문 성우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거죠.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걸그룹 멤버나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는 건 아예 보편화 돼 버렸습니다.


지난 2013년엔 한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한 외화 더빙 개그에 성우들이 반발해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이 사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뇌리 속에 성우의 가치가 이제는 고작 이 정도로 밖에 안 보이나라는 생각이 드는 씁쓸한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장정진 씨나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배한성 씨 등 외에는 최근 몇 년 새 이른바 ‘스타 성우’로 불리는 인물이 떠오른 사례도 없어 보입니다.

최근에 기자와 잘 아는 한 지상파 방송국 PD는 비록 농조이긴 했지만 아예 “성우 쓰면 ‘장사가 잘 안돼’”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성우들이 대중에게 잊혀져 가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최근에 성우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됐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방송(EBS) 성우들 이야기입니다.

‘재능 기부’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목소리 재능 기부’라고 하면 아는 사람도 있을 거고,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문 성우 목소리 재능 기부’라는 건 모든 독자들에게 새로울 겁니다. 바로 EBS 성우극회(voice.ebs.co.kr)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달 6일이었습니다. 이날 EBS 성우극회 70여명이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목소리 재능 기부를 하기로 2년 간 체결을 맺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이채진(사진 맨 왼쪽) EBS 성우극회 극회장, 최지환(뒷편 왼쪽) 사업팀장, 정영웅(뒷편 오른쪽) 운영위원장이 직접 방문해 기부의 뜻을 알렸고,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 드림팀 라인업’을 얻게 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크게 반기며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2년 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제작하는 홍보동영상이나 캠페인 등 여하간 ‘사람의 육성이 필요한 활동’이라면 무엇이든지 EBS 성우극회 전문 성우들의 차원이 다른 목소리 연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화를 하면 ARS 안내도 EBS 성우극회 전문 성우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EBS 성우극회는 내년이면 벌써 40주년을 맞이하고,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방문해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봉사활동의 역사는 10년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 역시 EBS 성우극회 회원들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해 왔습니다.

한국 유니세프 사업은 1948년부터 우리나라 어린이를 지원했고, 1950년에 우리나라 정부와 기본협정을 체결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니세프는 위기에 처한 전세계 어린이들에 대한 구호 활동을 벌이는 UN 기구죠. 대중의 협력, 도움, 관심이 꼭 필요한 곳입니다.

이채진 회장은 “이곳 저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지는 오래 됐는데 전문 성우로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유니세프 재능 기부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BS는 조회수, 시청률 등의 ‘셀프 노예’가 돼 자극과 왜곡으로 언론과 미디어가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양질의 콘텐츠로 호평을 받는 방송국이죠.

이렇게 써 놓고 보니 EBS 성우극회의 유니세프에 대한 자발적인 목소리 재능 기부 행보는 지극히 ‘EBS 다운’ 행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성우들, 특히 EBS 성우극회 회원들. 위기라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응원합니다.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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