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재사고를 은폐했을까? 원청기업의 ‘甲’질로 본 씁쓸한 현실

대기업들은 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재사고를 은폐했을까? 원청기업의 ‘甲’질로 본 씁쓸한 현실

기사승인 2015-03-26 00:09:55

“산재보험료 꼬박 꼬박 내는데, 왜 산재 보상 못 받나?” 하청업체 등골 빼먹는 원청기업들

대기업 한해 수천억원대 산재보험료 감면 ‘특혜’ 산재사고 은폐의 원흉

[쿠키뉴스=최민지 기자] “산재보험료를 월급에서 떼 가면서 막상 사고를 당하면 보상도 못 받는데, 왜 보험료를 내야 합니까?” 한 대기업 조선업체 하청 노동자 김영민(35·가명)의 볼멘소리다.

김씨와 같은 불만을 갖고 있는 대기업 조선업체의 하청 노동자들은 수도 없다. 힘없고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그들은 늘 원청업체의 요구대로 할 수밖에 없다. 김씨처럼 산재보험료를 매달 내면서도 실제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 업체들은 한발 물어나기 바쁘다. 그러면서 그 하청업체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조선업계 내 원청과 하청업체 간 암묵적인 갑을관계 때문이다. 현실이 그렇다.

그런 그들이 힘이 없고, 억울해도 참았던 조선업계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의 갑(甲)질을 더 이상 못 견디고 칼을 빼 들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울 것이란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비정규직 노조)와 울산지역 노동자건강권대책위는 24일 권오갑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고위 간부 3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현대중공업의 산재사고 은폐건수가 무려 86건에 이른다며 회사 대표 등 임직원을 형사고발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9명의 근로자가 일하다가 사망했다”며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국회가 산재사고 은폐 과징금을 5배로 강화한다거나 119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또한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갑을 관계 때문에 원청 대기업이 압력하면 신고조차 못해

산업안전보건법 등 현행법상에 따르면 산재피해 당사자가 신고접수를 해야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막상 갑을 관계에 놓여있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원청 대기업의 압력에 신고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피해자나 대리인이 사고 신고를 해야만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산재사고 은폐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실토했다.

◇산재사고 조사 들어가도 유착관계 심해 조사 신뢰성 떨어져

설령 산재사고 조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조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도 현실이다. 중공업 특성상 특정 지역에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어 지역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다, 지역경찰과 산재사고 여부를 결정하는 근로복지공단, 감독권을 가진 고용노동부 지역지청, 병원 등 지역 유관부서와의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어 공정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원청으로부터 해당 하청업체가 재계약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우려와 해고라는 불이익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 자진해서 산재사고 접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 9일 경남 거제에 위치한 A중공업 거제 조선소 내에서 협력사 직원이 타고 가던 자전거와 사내 버스가 충돌해 중상을 입는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지역경찰과 지역 근로복지공단 등이 A중공업의 눈치를 살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A중공업은 여전히 현행법상 산재사고에 해당하는 이 사고에 대해 서류조작 등으로 교통사고라고 우기고 있지만 논란이 일자 25일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에 산재사고로 접수시켰다.

◇사고를 조사한 경찰 조사관 “자신은 빼 달라” 하소연

취재과정에서 지역 유관기관의 유착 관계도 드러났다. 사고를 조사한 경찰 조사관은 “자신을 빼 달라”며 하소연 하기도 하는가 하면 산재여부를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 측은 사고소식을 접하고도 공상 처리되면, 산재가 아니라는 거짓증언으로 기자를 상대로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산재사고를 은폐하려는 이유는 매년 수천억 원 대에 이른 산해보험료 특혜 감면 때문이다. 특히 산재사고발생률이 높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등 중공업계와 건설, 철강업종 등에서는 회사마다 매년 100억원 대가 넘는 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고 있어 산재사고 은폐가 실익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설령 산재은폐가 들통 나더라도 현행법상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낮다는 것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매년 수천억원대 산재보험료 정상 추징과 산재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는 방식에서 작업장 내 모든 사고를 객관적인 자료 등으로 판단하는 발생주의로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산재사고 발생률은 OECD 가입국들 중 하위권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 산재사고 발생률이 최하위인데 산재 사고 사망률은 3위”라며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독일은 우리보다 4배나 높은 산재사고가 접수되는 것을 볼 때 그만큼 산재사고 은폐가 많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freepen07@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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