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정의에 대한 질문… 2년이나 개봉 연기됐지만 다수가 만나야 할 ‘소수의견’

국가와 정의에 대한 질문… 2년이나 개봉 연기됐지만 다수가 만나야 할 ‘소수의견’

기사승인 2015-06-24 00:10:55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기가 차다. 2009년에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2013년에 제작된 영화가 2015년에 개봉을 하는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물은 ‘변호인’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애환을 그린 ‘카트’처럼 영화 ‘소수의견’을 관람하는데 타임머신은 필요하지 않다. 현재 사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북아현동 13구역 산동네 재개발 현장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에 대해 경찰은 강제 진압을 결정한다. 물대포와 화염병을 시작으로 흡사 백병전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에서 철거민의 10대 아들과 20대 의경이 숨진다. 검찰은 철거민과 철거용역을 각각 살해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긴다. 하지만 철거민은 용역이 아닌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며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를 주장한다.

지방대 출신에 소위 족보도 없는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은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변론을 맡게 된다. 윤진원이나 검사 홍재덕(김의성)이나 대충 사건을 마무리 하려는 찰나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이 끼어든다. 검찰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정황을 들은 윤진원은 비협조적인 검찰 태도에 의문을 품으며 운동권 출신인 선배 변호사 장대석(유해진)에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자고 졸라댄다. 그렇게 이들은 박재호를 국민참여재판에 세우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에 나선다.

원작은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이지만 제작진은 용산참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픽션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용산참사가 떠오른다. 연쇄 살인사건으로 여론을 덮으려던 청와대 압력과 검찰의 수사기록 은폐 과정도 당시 현실과 닮았다.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예상될 무렵 영화는 대한민국 속살을 드러내는 법정 드라마로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동안 숱한 법정물이 쏟아졌지만 극 전개를 돕는 곁가지로 처리됐을 뿐 법정 그 자체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흔치 않았다. 영화는 사건 수임과 변론에 이르기까지 변호사 업계의 풍경과 다소 고압적인 검찰과 법원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부족한 제작비를 아껴가면서 춘천지방법원에서 찍은 국민참여재판 모습도 마찬가지다. 원고와 피고 사이의 치열한 법적 공방도 실제 법조계 인사가 놀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다. 기자나 야당 국회의원의 모습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무조건 관객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는 반전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타 한국영화와 달리 조미료를 자제한 뚝심도 빛난다. 영화는 어떤 진영의 잘잘못을 가려 통쾌함을 주는 쉬운 길 대신 모든 구성원들의 사정에 주목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두 명이 법정에서 만난 장면은 창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결말의 토대가 됐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급적 모두 담기 위해 펼쳐진 어색한 전개 몇 군데는 못내 아쉽다.

못 나가는 변호사를 연기한 윤계상은 잘 나가던 아이돌 가수가 배우로 자리잡기 위해 왜 그리 몸부림을 쳤는지 증명해냈다. 빼어난 연기를 펼친 것은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유해진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시종일관 극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안정적으로 떠받친다. 충무로 차세대 유망주 김옥빈은 여전히 또래 배우들과 결이 다르고, 최근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주연 못지않게 섭외에 공을 들이는 이경영도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아예 악역의 한 축으로 나서 능수능란한 연기를 뿜어내는 김의성의 아우라는 날선 영화의 묘한 균형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들 배우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속도감 있는 편집과 음악도 백미다.

무엇보다 2013년이라고 적힌 소품에서 보이듯이 국가와 검찰을 다뤘다는 이유로 개봉이 2년이나 밀리는 동안 온갖 마음고생을 했을 감독과 프로듀서, 스태프 등 소수들의 눈물이 다수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다시 봐도 기막힌 영화 제목인 ‘소수의견’은 24일 개봉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한 무능력한 현 정부의 모습과 겹쳐져 묘한 시의성을 제공받았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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