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철이 없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겁니다.”
지난 22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D홀에서는 제2회 서울 키덜트 페어가 막을 올렸다. 평일임에도 불구, 입장 티켓을 끊는 데 한참을 기다려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키덜트 페어를 찾았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데이트 차 놀러온 것으로 보이는 커플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티켓을 끊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성인 남성들이 유난히 많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2배는 돼 보이는 캐릭터 인형 옆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 드론을 직접 날리며 즐거워하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RC카를 보며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 이들은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30대 성인 남성들이었다.
관련 제품을 파는 곳에서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의 프라모델을 계산하고 나온 A씨(30대 초반)는 “평소에 이 정도까지는 지출하지 않는데 꼭 사고 싶었던 프라모델이 있어 오늘은 좀 무리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A씨는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낸드로이드다. 특별히 수집하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하나를 사고 나면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사다보니 어느새 집에 30개가 넘게 있더라”고 말했다.
사회에서는 A씨와 같은 사람을 키덜트라고 부른다. 키덜트란 어린이(kid)와 성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말한다.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20·30대의 성인계층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나 실상은 사전적 의미와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년시절의 향수 때문이 아닌 하나의 취미생활로 키덜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고 키덜트 페어를 찾은 B씨(30대 중반)도 그 중 하나였다. B씨는 키덜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영화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배트맨 시리즈”라고 입을 열었다.
“이런 문화를 즐기는 것은 내 취미생활이다. 일부 사람들이 과거의 향수 때문에 키덜트 문화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TV에도 많이 나오고 해서 사람들이 드론에 관심이 많지 않나. 이것도 하나의 키덜트 문화다. 그런데 과거에는 드론이라는 장난감이 없었다. 흔히 키덜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취미생활로써 이러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드론이나 피규어 등이 단순한 장난감이라고 하기에는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20·30대들이 이러한 문화를 즐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것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져 자연스럽게 키덜트 문화를 접하게 됐다는 C씨(20대 중반) 역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듯이 나도 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라며 “성인남성들이 술·담배에 돈을 많이 쓰는데 나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피규어를 사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키덜트 문화는 특이한 사람들만 소비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문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들을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만 깊은 관심이 있고 다른 분야에는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오타쿠’라고 표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C씨는 “피규어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직도 철이 안 들었냐며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나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키덜트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같이 키덜트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다겸 기자. plkplk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