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오피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직장인 괴담

[쿡리뷰] ‘오피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직장인 괴담

기사승인 2015-08-24 12:34: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현실이 영화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정말일까. 영화 ‘오피스’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이 말 한마디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피스’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죽이는 살인마가 등장하는 호러 영화의 전통적인 공포와 함께 ‘회사 사무실’이란 일상적인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를 보여준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경쟁시키듯 번갈아 선보이며 무서움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상징적이다. 기존의 호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공포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공포를 아무 설명 없이 하나씩 순서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나간 흔적은 없는 김병국(배성우) 과장과 6개월의 인턴 기간 중 5개월이 넘도록 일하고 있지만 아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한 이미례(고아성) 인턴사원이 그 주인공이다.

첫 장면에서 김병국 과장은 회사에서 퇴근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나이 든 어머니와 부인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를 맞이한다. 어린 아들의 “다녀오셨어요”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흐뭇해 하지만 아픈 다리를 끌며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에 미소는 곧 사라진다. 김 과장은 양복을 그대로 입은 채 밥을 먹고 TV를 본다. 가족들이 그에게 “왜 옷을 안 갈아입어”라고 묻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멍한 눈빛으로 자리를 지키던 김 과장은 갑자기 신발장으로 가서 뭔가를 뒤적거린 끝에 망치를 집어 든다. 그리고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살해 장면 직후엔 이미례 인턴사원의 출근 장면이 이어진다. 이미례는 출근 시간대 만원 ‘지옥철’에서 탈출해 겨우 신도림역에 내린다. 그녀는 출근시간에 늦을까 두려워 불편한 정장 차림에도 허겁지겁 회사로 향한다. 겨우 엘리베이터의 문을 붙잡아 타고 나면 가득 들어찬 사람들의 눈총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난관을 뚫고 사무실 의자에 앉으면 한숨 돌리기도 전에 “요즘 인턴은 지각도 하네”라는 회사 정직원의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이 뿐 아니다. ‘오피스’는 시종일관 회사 내부의 곳곳을 누비며 직장인이라면 상상하기 싫은 상황들을 하나씩 제시한다. 회의실의 닫힌 문 안에서는 실적을 채우지 못한 직원을 향한 비인간적인 질책과 초과 달성한 직원을 향한 과한 찬사가 쏟아진다. 점심시간에 누군가를 일부러 제외하고 식당으로 향하는 직장 내 왕따는 물론이고 뛰어난 스펙과 외모를 가진 사원과 비교당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다른 직원의 업무를 대신 떠맡아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모습이나 비싼 집값 때문에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졸면서 통근하는 모습에 이르러선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다.

형사 최종훈은 김 과장이 실종된 이후 회사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수사권을 쥔 최 형사는 쉴 틈 없이 팀원들을 취조하고 CCTV를 확인하며 사건의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간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던 그 또한 한계에 마주친다. 경찰 조직에 소속된 일개 형사라는 점에서 최 형사는 자신이 영업 2팀 직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지를 위해 살인 사건을 숨기려는 회사 측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또한 경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움직임이 제한되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영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살아남은 누군가는 다시 아침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지하철을 탄다. 그렇게 퇴근으로 시작된 영화는 출근하며 막을 내린다. 충격적인 살인사건 이후에도 일상이 이어지듯 영화를 본 관객들 또한 다음날이면 학교로, 또 직장으로 집을 나설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속삭인다. 당신의 관성적인 하루 일상과 그 속에서 언제 불행한 일들이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영화보다 더 무섭지 않느냐고. bluebel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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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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