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전역 연기한 장병들, 그들의 바람직한 ‘조건반사’

[이슈 인 심리학] 전역 연기한 장병들, 그들의 바람직한 ‘조건반사’

기사승인 2015-08-25 13:33:55
ⓒAFPBBNews = News1

북한의 도발 이후 쏟아져 나온 언론보도들 중에 관심이 갔던 것 중 하나가 장병들의 ‘전역 연기’ 선언이다.

24일 육군에 따르면 북한군이 포격 도발을 한 서부 전선 일반전초(GOP) 부대인 육군 5사단에서 부분대장으로 복무하는 문정훈(24) 병장은 오는 25일 전역 예정이지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전역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2일 전역 예정인 같은 부대 포병연대에서 근무하는 민홍기(23) 상병도 같은 결심을 했다. 중서부전선 후방 5기갑여단 정동호(22) 병장과 김서휘(23) 병장, 김동희(24) 병장, 이종엽(23) 병장 등도 24일에서 다음 달 중순까지 각각 예정된 전역을 미루기로 했다. 65사단에서 분대장으로 근무하는 서상룡(24) 병장은 전역까지 2주 이상 남았지만 전역 연기를 일찌감치 결심했다고 한다. 강원 인제지역 육군 12사단 방공중대 방공작전통제관 김진철(27) 중사도 오는 31일 전역 예정이지만 이번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전역을 연기하기로 했다.

북한의 도발에 전역을 늦추는 장병들은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는다. 문 병장은 “도발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우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 이기겠다”고 말했다. 김 중사는 "지금은 비상 상황인 만큼 임무수행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전역 후 친구들과 계획한 여행은 잠시 미뤘다"고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건 반사(conditioned reflex)’라는 것이 있다.

러시아 심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가 1902년에 개로 침샘을 연구하다가 사육사의 발소리에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하고 ‘고전적 조건화 실험’을 했다. 개에게 음식을 주기 전에 종을 울렸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학습을 시키게 되면 개는 종소리만 울리면 침을 흘리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건 반사’이다. 종소리와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은 원래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반복된 학습을 통해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는 전쟁에 대한 반응은 그리 크지 않다. 2.1지속가능연구소와 YeSS가 전국 대학생 2350명을 조사한 결과, ‘전쟁이 나면 기꺼이 나가 싸울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34%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 ‘보통이다’ 등 부정적으로 응답한 학생이 66.1%였다.

이런 국가관과 전쟁에 대한 인식이 군 입대와 훈련을 통해 높아지고 전쟁에 대한 학습돼 ‘조건 반사’를 드러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전쟁에 관심조차 없던 대학생들이 군복을 입은 후 군인으로서 반복된 훈련과 정신무장을 통해 이번 북한의 도발에 자진해서 전역까지 미루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제노비스 증후군(Genovese syndrome)’의 관점에서도 이번 도발과 관련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1964년에 3월 13일 뉴욕 주 퀸스 지역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여성인 28세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윈스턴 모슬리(Winston Moseley)라는 남성에 의해 자상을 입는다. 제노비스의 구조 요청 소리에 아파트에 살던 동네 사람들은 불을 켜고 사건을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그녀가 강간 및 살해당하는 동안 38명의 시민들 어느 누구도 달려가 도와주지 않았다. 살인이 다 끝난 후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다.

뉴욕 타임스 기자 로젠탈이 시민들의 방관자적 태도와 도덕성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논란이 가속화 됐다.

4년이 지난 1968년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존 달리(J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e)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낯선 사람들이 도와주는지에 관해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실험은 토론을 하는 중에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참여시킨 실험참가자로 하여금 몸이 아프다고 말하게 했다. 점점 힘들어하는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참가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익명성을 유지해야 하는 실험이라 인터폰을 통해 옆방에 있는 다른 일반참가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실험결과는 이랬다.

토론에 참가자가 많았을 때는 31%만 도와주려고 했다. 반대로 한 사람만 참여했을 때는 83%였다. 이렇게 어떤 사건에 대해서 도와주기보다는 방관하는 상황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또는 ‘제노비스 증후군(Geneves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남북고위급회담이 한참 진행될 때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보면서 다소 놀란 게 있다. 다른 사안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전쟁 위기’에 처해있고, 그와 관련된 ‘사생결단’ 담판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검색어 1위에 최근 불륜 의혹이 일고 있는 한 방송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사소한 현상 같지만 대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노비스 증후군’에 걸린 것이라고 본다. 손꼽아 기다려 온 전역까지 스스로 연기하는 장병들도 있고, 회담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난 방관하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부국(富國)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국가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어렵고 힘들 때 방관하거나 구경만 하는 이들이 없는, 그런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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