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시신’ 살인사건 전말…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트렁크 시신’ 살인사건 전말…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기사승인 2015-09-21 16:43:55
"전 국민을 놀라게 한 '트렁크 시신' 살인사건은 결국 사소한 시비로 증오심을 키워간 일그러진 40대가 치졸한 복수극을 준비하다 엉뚱한 여성이 희생된 사건으로 귀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의자 김일곤(48)에 대해 "오랫동안 사회에 대해 품어온 불만과 적개심이 이런 극단적인 범죄로 표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사회적인격장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자신의 범행 동기와 행적 등을 진술해 대부분의 전말은 밝혀진 상태지만 대부분 김씨 진술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에서 경찰이 수사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 숨진 女는 다른 남성 살해위한 '미끼'…주머니에선 '데스노트'

김씨는 이달 9일 충남 아산의 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던 주모(35·여)씨를 납치했다. 이는 지난 5월 접촉사고로 시비가 붙은 A씨를 살해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김씨는 진술했다.

그런데 납치 당일 주씨가 화장실에 가겠다며 차에서 내린 뒤 도망가자 홧김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복수 대상으로 지목한 A씨와의 악연은 5월 초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차량 접촉사고가 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다음 달 자신만 벌금 50만원을 받자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A씨를 계속 찾아가 시비를 걸었다. 김씨는 '내가 피해자인데 오히려 가해자로 처벌받아 억울하다'며 재판장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그동안 자신을 괄시하고 때로는 괴롭혀 왔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경찰에 검거될 때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1992년부터 자신을 괴롭혔다고 생각한 사람 28명의 이름이 담긴 쪽지가 발견됐다.

그는 이 쪽지에 꼬깃꼬깃 그동안 원망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으면서 '괴물'로 변해갔다.

김씨는 경찰서에 잡혀 와서도 자신의 쪽지를 가리키며 "이것들을 다 죽여야 하는데"라는 말을 뇌까렸다.

◇ 전문가 "세상에 대한 적개심에 범행"…"사회가 만든 괴물?"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김씨의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가 이번 범행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김씨는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일일지라도 이를 겪으면서 세상이 자신을 부당하게 대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이나 분노가 표출돼 이처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김씨는 세상에서 부당히 대우받고 차별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피해의식을 키워간 것"이라며 "벌금 50만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다시 억울하게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응징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여성을 미끼로 쓰려고 마트에 가서 위험 부담이 있는 납치를 한 뒤 죽였다는 진술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며 "살인 동기는 김씨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정황적, 객관적 근거를 더 찾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김씨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다소 경솔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에 둔감한 것을 미루어봤을 때 김씨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술적 개념인 사이코패스 여부보다는 피의자의 성향과 특질에 집중해야 한다"며 "공감력과 죄책감이 없고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을 보통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극단적인 범죄자 중 이런 성향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 드러나는 행적들…여전히 남는 의문들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하던 김씨가 구속된 이후에는 경찰 수사에 협조적으로 응하면서 그동안 행적도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주씨를 납치해 살해하고 나서도 그의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대범함을 보였지만 이와 동시에 전과 22범의 '노련함'을 발휘해 추적을 피했다.

주로 톨게이트 출입기록이 남는 고속도로보다는 주로 국도로 이동했고, 시신을 불태우거나 갖고 있던 물건들을 버리는 등 증거를 없애려 했다.

주씨 시신에 불을 지른 이후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는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녔다. 그는 주로 모텔에서 지냈지만 필요에 따라 노숙도 했다.

김씨가 주씨의 시신을 훼손한 것은 주씨를 살해한 이튿날인 이달 10일이었다.

김씨는 이날 강원도 동해시 인근 공터에서 차를 세운 뒤 주씨의 시신을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여전히 김씨의 행적에 의문이 제기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김씨는 주씨의 시신 곳곳을 훼손한 것은 주씨가 숨져버려 A씨를 살해하겠다는 소기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자 울분이 차올라 그랬다고 진술했지만 여전히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시신에서 훼손된 부위를 봤을 때 성폭행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경찰은 현장 정황과 진술을 토대로 봤을 때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훼손한 시신은 도주 중 강물에다 버렸다고 진술했지만 훼손된 부위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주씨의 사인에 대해서도 명확한 수사가 필요하다.

김씨는 주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사건 다음날 부검의는 구두소견으로 주씨의 사인을 목 부위에 입은 흉기로 인한 상처라고 밝힌 바 있어 정식 부검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 경찰 수사에서도 허점 드러나

경찰이 범행 8일 만에 김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간 수사에 아쉬움이 있다.

김씨는 지명수배됐음에도 모텔에 머무르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한 차례도 검문검색을 당하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의 얼굴이 담긴 수배전단이 전국에 뿌려진 상황에서 은신처인 경기도 하남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구 청담동으로 와서는 다시 걸어서 성수대교를 버젓이 건너 성수동으로 올라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고, 그 길로 동물병원까지 가 난동을 부렸다.

김씨는 주씨 시신에 불을 지른 곳이자 자신을 쫓기 위한 수사본부가 설치된 성동서 인근을 활보했지만 경찰은 김씨가 동물병원에 들어가 안락사 약을 달라고 흉기난동을 피우기 전까지 그의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수사본부까지 설치한 경찰이 수사 끝에 김씨를 잡은 것이 아니라 자포자기한 김씨가 제 발로 자신의 존재를 노출한 까닭에 '얻어걸렸다'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김씨가 절도죄로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나서 2013년 3월 출소할 때 교정 당국이 경찰에 출소사실을 알리지 않아 우범자 관리 대상에서 빠진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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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건들지 마!" 표범 들이받는 누"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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