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일명 ‘이태원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사진)이 17년 만에 한국 법정에 섰다.
패터슨은 “피고인 준비됐으면 출석시키세요”라는 말이 떨어지자 서울 서초구 법원청사 417호 법정의 왼쪽 문을 통해 들어왔다. 수의를 입은 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검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살해된 자는 있고, 살해한 자는 없었던’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의혹을 받는 자가 무려 17년 만에 한국 법정에 들어 선 순간이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법원 청사에서 가장 넓은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재판 20분을 앞두고 100자리가 넘는 방청석이 꽉 찼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법원 경위도 10명이 넘게 투입됐다.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 패터슨과 사건 현장에 있었던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도 법정에 왔다. 리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패터슨은 지금도 안 했다고 하는 데 나쁜 사람. 이번 기회에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에디(에드워드 리)는 증인 신문을 할 때 꼭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에 입장한 패터슨은 자신을 보기 위해 방청객들로 꽉 들어찬 객석을 보더니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는 “매우 조금” 알아듣는다고 영어로 답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으며 패터슨이 어떻게 조씨를 살해했는지를 말하자 조씨의 아버지는 괴로운 듯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였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가 다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패터슨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엔 리가 단독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1998년 사면됐다. 그리고 검찰이 실수로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패터슨의 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는 당시 범행은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질렀으며, 이후 교묘하게 진술을 바꿔 패터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접견 중 항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면 재판이 몇 달 이상 걸린다고 답하자 패터슨이 깜짝 놀라며 ‘석 달 안에 무고함이 밝혀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패터슨이 감옥에서 어머니의 성경책을 넣어달라고 하고 기도도 해달라고 했다”며 “패터슨은 한국인 홀어머니가 키운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리와 패터슨에 대한 앞선 재판기록을 참고하되 백지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패터슨의 재판을 6개월 내에 끝내겠다고 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이달 22일이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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