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 4월 시행된 후 최근에 처음으로 ‘위로금’ 지급 결정서를 통보받은 김모(55)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막힌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40년 가까이 쏟아부은 치료비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1976년 11월 30일 중동부전선 최전방에 있는 강원 양구군 해안면의 한 마을 뒤로 올라갔다가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했다.
나무도 하고, 토끼도 잡을 겸 올라간 그곳엔 지뢰 표시조차 없었다. 눈이 내려 땅 위에 이상 물체를 분간하는 것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는 갑자기 폭발한 ‘폭풍지뢰’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팔을 다쳐 일할 수 없었기 때문이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는 김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만난 악덕 업주로부터 도망쳐 나와 잠시 집에 머무르고 있던 시기였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구두 수선일을 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김씨는 자녀 3명을 키우면서 빚까지 졌다.
그가 이번에 국방부로부터 통보받은 지뢰 피해 위로금은 3642여만원. 39년 동안 쏟아부은 치료비의 절반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2012년에 지뢰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하면 1억원이 넘는 위로금이 지급된다.
정부의 위로금 산정 방식이 당시의 월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김 씨와 함께 이번에 통지서를 받은 1977년 지뢰 피해자는 평균 5020여만의 위로금이 책정됐다. 한 해 차이로 월평균 임금이 40% 차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위로금도 그만큼 적게 산정된 것이다.
그는 위로금 통보 액수와 관련해 당국에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김 씨는 “다친 다리가 곪아 터져서 재수술까지 하는 등 40년 가까이 고생하고, 지뢰 피해자 특별법을 만들고자 뛰어다녔는데 고작 이런 액수가 나와 기가 막힌다”면서 “사고 당시는 지뢰표시조차 해놓지 않았던 당국이 위로금 액수에서 막대한 차이가 나는 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돈이 급해 이번 위로금을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받아버리면 나머지 사고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내가 희생되더라도 뒤의 분들이 좋은 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이의를 제기하고, 필요하면 소송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인 지뢰피해자 지원 활동을 펼치는 (사)평화나눔회는 “이번 위로금 지급 안건은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부결됐던 사안”이라며 “지뢰피해자 지원법이 개정되면 피해자들이 더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데 당국이 급하게 ‘날치기 통과’를 시켰다”고 지적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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