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조희팔 사건으로 본…스필버그도 넘어간 ‘다단계 심리’

[이슈 인 심리학] 조희팔 사건으로 본…스필버그도 넘어간 ‘다단계 심리’

기사승인 2015-11-09 10:11:55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58)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조희팔 아들에 이어 그의 내연녀를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긴급체포했다는 보도가 지난 7일 나왔다.

조희팔은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준다며 2004∼2008년에 전국에서 4만∼5만 명의 투자자를 끌어 모아 약 4조원을 가로챈 뒤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주했다. 경찰은 그가 2011년 12월 19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의 한 가라오케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생존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검찰은 조씨 아들과 내연녀 등을 상대로 은닉재산의 행방뿐만 아니라 조희팔 위장 사망 의혹, 정관계 로비 및 비호세력 등도 조사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불법 다단계에 빠지는 걸까? 단순히 안정된 고수익과 높은 이자를 더 많이 준다는 숫자적 착각으로 빠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심리학에는 ‘동조효과’(conformity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동조심리현상을 말한다. 나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고 그 관계 속에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1935년에 터키 태생의 펜실리아 주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무자퍼 쉐리프(Muzafer Sherif)는 ‘관점 속 사회적 요소들에 관한 연구(Study of some social factors in perception)’에서 동조에 관한 최초의 실험을 했다. 실험은 자동운동(autokinetic)에 관한 실험이었다.

빛이 없는 어두운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작은 불빛의 점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으면 이 불빛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가 본 불빛의 움직임의 방향과 크기에 대해서 다르게 기술했다. 하지만 개별이 아닌 집단에 속할 때는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타인의 관점을 수용해서 집단에 맞는 또 다른 불빛의 움직임에 맞추려는 결과를 가지게 됐다. 이처럼 사람은 나의 생각과 시각보다는 집단의 상황과 판단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국에 조희팔 사건이 있다면 미국에는 ‘버나드 로렌스 메이도프(Bernard Lawrence Madoff)’ 사건이 있다.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 출신인 메이도프는 1960년부터 20여 년 동안 신규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으로 주면서 폰지(Ponzi) 사기를 벌이다 결국 2008년에 체포됐다. 폰지 사기라는 것은 1920년대에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인 이후 사용되는 말이다.

피해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약 75조 원(650억 달러).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기였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더욱 놀랍다.

국제적인 기업,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노벨상 수상자, 상원의원 등 엄청난 유명 인사들이 포함됐다. 즉, 내가 아닌 유명인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투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비합리적인 판단’ 속으로 빠지게 된다.

다단계에 빠지는 두 번째 이유는 책임감의 분산현상이다.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고도 한다.

이는 1913년에 최초로 막스 링겔만(Max Ringelmann)이 ‘말들의 능력에 대해 연구’에서 처음 발견했다. 말의 힘이 100이라면 두 마리의 힘은 200이 돼야 하는데 수레를 두 마리가 끌 때의 힘이 200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밧줄을 혼자의 힘으로 당길 때와 여럿이 같이 할 때의 힘이 다른 것을 실험을 통해 밝힌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힘은 적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타인에게 자신이 가지는 책임감을 분산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모든 짐을 지는 것보다 타인들과 나눠지고 싶어 하는 심리인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다단계도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계급이 존재한다. 이전 두 가지 이유들과 함께 계급은 곧 ‘권위’와 같은 심리를 만들어낸다. 1974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권력’ 앞에서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려는 기본적인 심리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은 교사 역할을 하게하고 학습자는 외운 단어가 틀릴 때마다 실제로는 충격이 없지만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실험에서 교사 역할을 맡게 되는 참가자가 실험 중단을 요구할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험에서 교사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450V인 최고치 전기 충격을 줄 때까지도 계속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이 다 끝났을 때 참가자들이 전기 충격을 계속해서 준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시켜서 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주변에 조희팔 사건과 같이 불법 다단계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안정적인 고수익’에 매달 이자까지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이 많다. 끊임없이 피해자는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집단 속에서는 앞에서 말한 동조효과, 링겔만 효과, 권위에 대한 복종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쉽게 집단 심리 속에 빠지게 된다.

물론 나쁜 건 사람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사기를 벌인 조희팔 집단이다. 하지만 사람들도 불법 다단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건강한 주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서민으로 살아가며 노후준비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게 마음 아프고 이러다보니 고수익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땀이 없는 대가’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또 “저 자리에 가면 나는 그러지 않을거야”라고 하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겸손’과 ‘책임감’을 스스로 가지려하는 ‘낮아짐’이 필요하다.


‘욕심’의 반대 심리는 ‘감사함’이다.

1942년 변호사가 된 후 2년 뒤에 반인종차별 활동으로 종신형을 받고 남아공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 생활을 3년만 해도 건강과 정신 모두 잃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건강하냐는 질문에 만델라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재연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ukimedia.co.kr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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