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통신비 인하” vs “내수 활성화” 딜레마 빠진 ‘단통법’… 과연 악법일까?

[기획] “통신비 인하” vs “내수 활성화” 딜레마 빠진 ‘단통법’… 과연 악법일까?

기사승인 2016-02-02 05:30:55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단통법’ ‘맥통법’ ‘책통법’ ‘피통법’ 등 수많은 ‘통법’들이 언급되고 있다. 정부의 가격 통제 정책을 비꼬는 단어들로 소비자의 정부 불신이 묻어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정말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가격 할인을 제한했을까. 들여다보면 소비자들의 생각만큼 나쁜 정부가 아닐 때가 많다.

◇단통법, ‘맥통법’에 빗대보니

최근 소비자들이 정부가 수입맥주 가격 할인을 제한하려 한다고 여겨 발끈하는 일이 있었다. 이른바 맥통법 논란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수입맥주의 할인판매를 제한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수입맥주들은 세금이 적고 낮은 가격에 국내에 들어올 수 있어 국산 맥주보다 오히려 싸게 팔 수 있다. 국내 맥주에 붙는 주세율은 72%로 상당히 높아 맥주 한 캔에 390원 정도 붙지만, 수입맥주의 경우 상당수가 220원, 300원 수준이다. 관세청 통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맥주의 납품가(수입 신고가에
세금을 합한 가격)는 네덜란드산의 경우 800원, 미국산은 1100원 정도에 불과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납품할 때 수입맥주 가격이 더 낮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점은 수입맥주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여 3~4배로 뻥튀긴 후 4개를 묶어 구매하면 1만원에 판매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겉으로 보면 파격적인 할인으로 보인다. 소비자가 마치 수입 맥주를 원 가격보다 싸게 구입하는 느낌을 줘 전체 판매량을 증진시킨 것이다.

수입 맥주 판매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자 국내 맥주 업계는 유통점의 이러한 할인 정책을 지적하며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 관계자의 “수입맥주 가격할인 제한” 발언이 나왔다. 소비자들은 이를 ‘단통법’에 빗대 ‘맥통법’이라고 비꼬며 불만을 드러냈다. 기재부 관계자는 “맥통법이라는 규제는 상상도 못했다. 수입 맥주 가격 할인 통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이어도 3000원짜리 상품을 500원 할인해준다고 할 때보다 4000원짜리를 1500원 할인해준다고 할 때 지갑을 잘 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분야의 기업들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마케팅을 벌인다. 화장품 기업들과 유통점들이 거의 상시 30%~50% 할인 간판을 걸고 행사를 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과연 단통법은 기업을 위한 ‘악법’일까?

지탄의 대상이 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도 도입 목적은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리베이트나 보조금을 미리 반영해 단말기 가격을 부풀리는 관행을 막자는데 있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게릴라식 지원금 경쟁이 아닌 서비스 경쟁 중심의 시장으로 개선해나간다는 취지였다.

단말기 출고가를 부풀리는 방식은 조금 더 복잡하다. 제조사와 이통사는 출고가를 높게 책정하는 대신 일선 유통점에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유통점의 직원들은 보너스 수당이 책정된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소비자에게 추천한다. 소비자들도 더 많은 할인을 받기 위해 유통점 직원의 권유대로 프리미엄 단말기를 구매하고 또 고가 요금제에 가입한다. 번호이동으로 이통사를 옮기면 경우에 따라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위약금도 면제 받을 수 있어 단말기를 자주 교체한다.

60만원짜리를 20만원 할인해준다고 할 때보다 100만원짜리를 50만원 할인해준다고 할 때 더 잘 팔리는 점을 활용하는 휴대전화 판매 시스템이다.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시스템이 통용됐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단말기 출고가 부풀리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3월 이통 3사와 팬택을 포함한 제조 3사에 단말기 가격을 부풀린 혐의로 총 453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기업들은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2심까지 과징금 부과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이 사안은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이통사들이 한시적으로 일부 소비자를 타깃으로 80만원~90만원에 육박하는 지원금을 지급해 경쟁사로부터 가입자를 뺏어오는 ‘대란’도 골칫거리였다. 인터넷 정보에 밝은 사람들은 출고가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최신 프리미엄 단말기을 17만원에서 20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반면 유통점 판매원의 말에 넘어간 이른바 ‘호갱’들은 부풀려진 단말기 가격을 거의 다 지불해야 했다. 같은 종류의 단말기인데 가격은 구매 시기와 장소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 것이다.




결국 방통위는 이용자 차별을 줄이고 고가 스마트폰 위주로 고착화된 단말기 시장을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2014년 10월 단통법을 도입했다. 최대 지원금을 제한하는 지원금 상한제와 분리공시제를 통해 출고가를 부풀리는 관행을 완화하려했다.

그러나 단통법은 분리공시제가 제외되면서 ‘반쪽’으로 전락했다. 당초 정부는 제조사와 이통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따로 게시하게 해 부풀려진 가격 규모를 투명하게 관리하려했다. 그러나 삼성 등 휴대전화 제조사가 영업비밀보호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무산됐다.

◇단말기 가격은 거의 그대로, 지원금만 줄어

단말기 제조사는 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통신 시장에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9개월 간 제조사가 이통사와 대리점에 준 리베이트는 8000억원이 넘는다.

정작 소비자들은 출고가 부풀리기보다는 단통법에 더 부정적이다. 소비자들은 단통법을 유통점들의 단말기 가격 할인을 막는 ‘악법’이라고 인식한다. 단통법 도입 이전과 비교하면 프리미엄 단말기 가격이 다소 낮아졌고 중저가지만 성능이 높은 단말기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할인 제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다른 측면의 문제도 있다. 기재부는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단통법 개정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큰 폭의 단말기 할인이 없어지자 소비자들은 눈에 띄게 소비를 줄이게 됐고, 그 결과 이동통신 시장 전체가 얼어붙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단통법 이전 약 4만여개에 이르던 영세 유통점들은 단통법 이후 30% 이상 폐업했다. 제조사들도 기기 판매가 눈에 띄게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기재부는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3월까지 단통법의 성과를 분석한 뒤 6월 전반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단말기 할인 지원금 상한액이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사태 진화에 나선 미래창조과학부와 기재부, 방통위 등 세 부처는 공동으로 해명자료를 내고 “단말기 보조금 상한 인상과 관련해서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통신비 인하” vs “내수 활성화” 딜레마

미래부와 방통위는 단통법 시행 이후 가계 통신비 부담이 줄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가구당 통신비 지출은 14만52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15만1100원보다 3.9% 정도 줄었다. 직전 분기 14만7700원에 비해서도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원금 상한액을 수정하면 오히려 더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단통법이 안착되도록 쭉 밀고 나가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지원금 상한액이 다시 높아지면 고가 요금제로의 가입 유인과 불필요한 부가서비스 강제 등 오히려 가계 통신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달 27일 최 위원장은 ‘2016년 업무계획’ 브리핑을 통해 “단통법에 대한 그동안의 추진사항을 점검해서 제도 보완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이통 3사가 현상 경품과 카드 청구 할인 등에 대한 자율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곧바로 이통사들은 약정 가입자에게 경품을 1등 300만원, 총합 3000만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주기로 지급 기준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그동안 우회지원금 논란에 휩싸였던 현상경품과 카드사 연계 할인을 허용해 지원금 상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단통법 이전엔 일부 소비자들이 지원금을 독식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면서 “지원금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에서 벗어나 단말기의 가격대 성능을 중시하게 된 점은 긍정적인 효과”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단통법이 뜨거운 감자가 될 소지가 크다”며 “하반기 보완 대책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단통법의 존폐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ideaed@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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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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