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지난 4월 서울에 위치한 A요양병원의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 들어서자 환기가 잘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났다. 환기구는 오래돼 먼지가 수북했다. 한 병실에는 10여명의 노인들이 침상에 누워있었다. 치매환자와 거동이 불편해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노인들 옆에는 도우미 직원 한 명이 간호사와 세 병동을 살피며 노인들의 식사를 챙기거나 의료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요양병원 재정의 한계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20~30여명의 환자들을 한꺼번에 돌보다보니 환자를 꼼꼼히 챙기기 어렵고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요양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중풍 등을 앓는 중증의 고령환자가 많은 요양병원 특성 상 24시간 의사가 상주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사가 퇴근한 시간에는 요양보호사나 상주 간호사들이 교대로 환자를 돌봐야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사태 이후 병원 시설이 달라진 것이 있냐고 묻자, 요양병원의 한 관계자는 “메르스 발생 이후 병원 시설이나 인력에 변화는 없다”며 “감염병이 발생한다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대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면역력이 약한 고령의 노인들이 많이 몰려 있는 ‘요양병원’의 관리가 여전히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요양병원은 전국에 1372개소가 운영 중이며, 이는 지난 2008년에 비해 약 2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요양병원의 환자 수요가 늘면서 공급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요양병원은 의사의 치료가 필요해 옮겨온 노인 환자들과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 없는 치매·중풍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는 곳이다. 요양병원을 찾는 노인들은 요양시설에 입소한 이들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더 나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료적 돌봄과 지원이 더 필요한 데도 불구하고 여건 상 관리가 미흡했다.
◇요양병원, 결핵 등 법정감염병 퍼지면 ‘속수무책’= 메르스, 결핵과 같은 감염병이 발생한다면 요양병원은 속수무책이다. 실제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서는 한 달 동안 4명의 노인이 결핵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노인들이 장기간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서도 결핵과 같은 감염병이 발생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각종 전염병은 대개 병균과 인간사이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환경이다.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한 대상이 바로 요양병원에 상주하는 노인들이다. 노인 환자가 주로 입원해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더욱 더 철저하게 관리가 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종 세균이나 다제내성균 등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은 원내 환경 탓에 노인들은 홍역, 볼거리, 풍진 등 바이러스질환과 감기 천식 등 호흡기질환, 각종 질환에 걸리기 쉽다.
결핵과 같은 법정감염병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걸릴 경우 치명적이다. 최근 65세가 넘는 노인 결핵환자 비율은 증가세다. 나라에서 해마다 4만3000명이 활동성 결핵 진단을 받고 이 가운데 2300명이 목숨을 잃는다. 메르스 사망자의 60배가 넘을 만큼 위협적이고 감염위험이 높은 것이 바로 결핵이다. 홍역 역시 감염되면 접촉한 사람 90%가 발병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같은 병동에 여러 사람이 결핵환자와 접촉해 있다면 공기 간 전염 가능성이 있어 결핵 감염이 삽시간에 발생할 수 있어 즉시 환자를 격리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염병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묻자, 한 간호부 직원은 “모른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노인성 질환 환자들이 입원하는 요양병원의 입원 제외 대상을 기존의 '전염성 질환자'에서 '전파위험이 커 감염병 관리기관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감염성 질환자'로 바꾸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입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감염성 질환은 제1군 감염병과 제2군 감염병 중 디프테리아, 홍역, 폴리오, 제3군 감염병 중 결핵, 수막구균성수막염, 제4군 감염병 중 페스트, 두창, 신종인플루엔자 등이다.
보건당국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시에 감염병 대상자를 제한하고 있으나, 일부 병원에서는 여전히 암암리에 환자를 무분별하게 받는 곳도 있다. 익명의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 수익을 위해 우선 환자를 감염병 질환자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않고 받는 곳도 있다”며 일부 병원의 부도덕한 환자관리를 지적했다.
◇의사 한 명당 진료환자 ‘30여명’, 환자 안전 누가 지키나= 결핵보다 심각한 감염병은 급성열성호흡기질환(인플루엔자)이다. 정희진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급성호흡기질환의 감염경로는 에어로졸이 가볍기 때문에 기압차나 에어콘 바람 등을 타고 다른 병실로 이동할 수 있다”며 “환자들이 같은 장소에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있다 보면 감염환자 발생 시 집단 발병 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빠른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에는 ‘중환자’들이 많지만, 의료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요양병원 의사 한 명당 담당 환자는 평균 30명이었다. 의사 한 명이 환자 70명을 담당하는 병원도 있었다. 간호사 한 명당 환자는 평균 30여명을 돌보는 곳도 태반이었다.
임채만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는 “2015년부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명의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배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요양병원을 포함한 일반 병원들은 중환자 전담전문의 배치 의무가 강제 조항이 아니다”며 “환자 위급 상황 시 신속하게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 간호사 인력을 늘릴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곧 환자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최소 의사 수를 2명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나, 의무조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도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비단 감염병 뿐 아니라 화재 등 각종 사고 발생 시에도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기자가 취재한 결과, 병원에 각종 화재사건이 발생할 시에 치매나 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미비한 곳은 수두룩했다.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어도 노인환자들이 화재 발생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마련돼 있지 않은 곳도 있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는 방문규 차관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참요양병원을 방문, ‘2016년 국가 안전대진단 요양병원 안전점검’의 일환으로 직접 시설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병원이 안전점검 수칙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그나마 서울참요양병원 등의 일부 병원은 시설이 잘 확충된 곳이다. 정작 복지부 차관이 들러 안전점검을 해야 할 곳은, 시설이 열악하고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다른 요양병원들이었다.
2014년 5월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사고 이후 노인이 대피할 수 있도록 출입문 ‘자동개폐장치’가 의무화, 노인요양시설의 야간인력 필수 배치기준 등의 대책이 마련됐지만, 보다 실질적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여전히 많은 요양병원이 감염병 대책 미흡, 열악한 시설 환경, 인력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며 “정부가 요양병원을 실사하며 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요구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newsroo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