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윤형 기자]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1등급 소수, 책임 절반 ‘보건복지부’

[기자수첩/장윤형 기자]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1등급 소수, 책임 절반 ‘보건복지부’

기사승인 2016-05-17 15:39:55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자기가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이다. 이는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돼 곤란을 겪는 것을 일컫는 사자성어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결과를 공개한 것을 두고 자승자박이라는 평가가 있다. 우리나라 주요 병원들의 중환자실의 열악한 현실이 적정성 평가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우리 병원들의 중환자실이 적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는 결국, 우리나라 중환자실 대부분이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다.


우선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 2014년 하반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중환자실에 대한 적정성 평가가 이뤄졌고 16일 그 결과가 공개됐다. 발표에 따르면 263개 병원 중 심평원 기준 상 1등급 중환자실은 11개소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서울 경기권 8곳과 부산대병원 등 영남권 3곳이 1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상급종합병원인 여의도성모병원 등을 포함한 대다수의 병원들은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또한 이번 적정성 평가에서는 지역 간 편차도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는 중환자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병원이 한 곳도 없는 곳들도 있다. 다시 말하면,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기준이 된다는 것에 다름없다. 1등급을 받은 중환자실이 위치한 수도권 거주자들이 환경이 열악한 중환자실을 보유한 지역병원 환자들보다 사망률이 더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면 그것만큼 ‘비극’이 있을까.


우리나라 의료기관 중 최상위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43곳인데, 중환자실 1등급이 11곳밖에 안된다는 것은 충격적 사실이다. 이번 평가 결과 공개를 본 국민들은 언론이 보도한 내용만 보고 “1등급 병원이 중환자실 환경이 제일 좋은 곳이구나”라고 판단할 여지가 높다. 그렇다고 1등급을 받은 병원들이 최상급의 중환자실 환경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 얼마 전 만난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은 “심평원에서 1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최상급 의료환경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 선진국인 미국, 유럽, 캐나다, 싱가폴 등의 중환자실 수준과 비교할 때 최소한의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러 의미에서, 이번 적정성 평가 결과는 어느 병원 중환자실이 ‘더 좋고 나쁘냐’의 기준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이번 평가 공개를 통해 드러난 중요한 진실은 바로 국내 종합병원 중환자실들의 심각한 부실이 드러났다는 것이 첫 번째요, 중환자실을 운영해도 적자를 보는 병원과 의사, 간호사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비용 보전을 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 부재가 두 번째다.

일각에선 위험한 환자를 돌보는 중환자실 의사들과 병원에 대해 정부가 ‘똑바로 하라’고 채찍을 주지만, 시설 설비나 인력 확충에 대한 비용 확충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는 식의 무책임한 대응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중환자실은 어떤 곳인가. 위독한 환자들의 생과 사를 판가름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는 곳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가장 최상위(3차) 의료전달체계인 상급종합병원들 조차 1등급을 받은 병원에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담 전문의가 하나도 없는 병원이 178곳이나 됐다. 전문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 1명 당 평균 44.7개 병상을 담당하고 있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캐나다는 공공의료기관에서도 환자 1명당 간호사 1명이 인력으로 배치되며, 미국 등의 선진국은 의료인력이 우리나라의 3~4배에 달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전담 전문의가 배치된 병원에도 24시간 상주하는 의사들이 없다. 중환자의 경우 언제 위급한 상황이 터질지 모른다. 낮에만 아픈 환자는 없고, 전담의가 상주하지 않는 평일에만 아픈 환자도 없다. 아픈 사람이 의사가 상주하는 시간에 맞춰 아플수는 없는 것 아닌가.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은 의사 당 8~12명의 환자를 케어한다. 환자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전담 전문의 배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 신임 회장은 “중환자는 하루 24시간 중 언제라도 상태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종플루 유행, 메르스 사태 등을 거치며 중환자실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국민 안전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는 환자 1명당 의료인력을 더 늘리고, 24시간 상주하거나 긴급 호출을 받고 달려올 수 있는 중환자실 전담의사를 반드시 두어야 한다는 조항이 의무화돼야 한다.

정부와 정부 산하기관이 병원 등급을 매기는 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내 중환자실의 위험한 현실에 대해 자각하고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모든 국민이 건강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의무가 있다. 정부가 평가만 시행할 것이 아니라, 환자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을 마련해야 한다. newsroo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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