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열의 끝없는 논과 밭- 시인 김용택

유휴열의 끝없는 논과 밭- 시인 김용택

기사승인 2016-06-23 14:59:40

농경 사회의 일상은 일과 놀이였다. 일이 곧 놀이였으며 놀이가 곧 일이었다. 일과 놀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우리 농경문화는 생태와 순환의 순리를 따라 자연이 시키는 일을, 자연이 하는 일을, 자연이 하는 말을 따라 살았다. 새 잎이 피는 봄날 햇살아래 노동하는 인간과 인간의 노동을 받아들이는 자연은 찬란하였다.

일과 놀이 속에서 꽃피었던 화려한 예술문화의 종합과 통합과 대동의 절정은 풍물놀이였다. 땀에 절고 논물 풀 불 든 옷을 벗어 놓고 화려한 굿 띠와 삼색 고깔을 쓰고 불빛 속의 화려한 군무는 일로 다져진 몸짓과 소리가 어울려 모든 억압 된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환생과 부활, 모든 권력으로부터 억압된 노동이 자연과 자연,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사이의 통로를 막고 맺히게 한다면 풍물놀이는 그 맺힌 것을 해체 하여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그리고 신명을 찾았다. 그러므로 농악놀이는 격정적이고 온몸을 불사르는 신명을 부른다.

산을 부르고 산을 넘어드렸으며, 강물을 불러 굽이를 힘껏 틀었다. 이 해방놀이의 걷잡지 못하는 ‘무질서’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질서에 다가가 스미고 섞이며 세상에 활력을 주고 산을 일으키고 들을 일으켜 세우는 장엄한 생명 질서를 창조했다.

한 때 유휴열이 ‘생 놀이’의 꽃인 농악에 빠졌던 그림들은 그가 우리 농경 사회의 깊은 뿌리에 그의 정신이 닿아 있음을 보여 줌으로서 그의 예술적 출발점을 우리들에게 각인 시켰다.

예술은 인간과 자연 질서가 부딪치고 부서지며 일으키는 끝 모를 상승 작용의 결과다. 용의 승천과도 같은 장엄하고 눈이 부신 예술 활동과 창조행위는 관념화된 질서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힘을 발휘한다. 낡은 질서를 뒤집고 부수며 파괴한다. 예술에서의 관념화와 정형화는 그 얼마나 고루하며 관료적이고 보수적인가.

예술이 낡은 세계를 타파하는 혁명을 잃어버린 시대는 죽은 시대다. 고루하고 지루한 구각을 무너뜨리고 생환과 부활을 꿈꾸는 몸부림은 멈출 수 없는 붓 끝에서 세상을 열어 제치는 꽃으로 피어난다. 이 땅에서 예술가로, 아니 진정한 인간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뼈저리게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적인 양심과 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확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굳은 신념이 없으면 얼마나 살기 어려운가. 정직과 진실의 당당함을 잃어버린 지식인들의 타락은 떼거리 조폭문화의 조직원을 양산하고 있다. 홀로 우뚝 선자들은 겸손을 경멸 한다.

예술에서의 겸손은 때로 더러운 타협을 뒤집어쓴다. 진정한 인간 정신과 예술정신은 누가 파묻는다고 해서 파묻혀지는 게 아니다. 진정은 차고 넘치는 법이며 구석에 있을수록 더욱 빛난다. 그 빛은 도저해서 언제든지 만천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걸 아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예술은 여기 저기 기웃거리거나 구걸 하지 않는다. 함부로 무릎 꿇지 않는다. 정직을, 진심을, 진실을 잃어버린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한 번 뜨고 보자는 천박한 출세를 꿈꾼다. 권력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예술을 타락시키고 능멸한다. 묵묵히 자기의 걷는 예술가가 드물다. 묵묵함 속에 혼신을 다하는 예술가가 드물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예술가가 없다. 조금만 뜨면(?) 온갖 거지 짓을 다 한다.

나는 이따금 모악 산 아래 유휴열의 집을 지나며 그의 오래 된 낡은 차가 정차 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한 장의 그림 앞에 서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림들을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그림 앞에 서서 내가 긴장하고 설레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캠퍼스와 물감과 세상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고뇌도 없는 붓질이 아니다. 그 철없는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림은 기술이 아니며, 작가는 기능인이 아니다. 좋은 그림은 아무리 커도 작아 보이고, 아무리 작아도 커 보인다. 그것이 하나의 창조된 세계이며 독립된 새로운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폭의 그림은 또 다른 세계의 창조다. 그냥 물감만 칠해 놓은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할 말이 없고, 좋은 그림 앞에 서면 사람들은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더 좋은 그림 앞에 서면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말 할 필요가 없어진다. 말이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폭 속에 놓여 있는 사물과 사물들이 내 뿜는 기운과 팽팽한 긴장과 갈등 그리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조화로움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완성된 그림은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어떤 부분을 떼어놓아도 독립 된 한 세계를 이룬다. 한번 그어 내린 붓 자국이 다른 붓 자국들과 긴장을 일으키며 동시에 어우러지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지 못한 그림은 죽은 그림이다.

나는 그림 속에 놓여 있는 사물들의 살아 생동하는 숨결과 그 긴장이 좋아 한다. 그러나 진정한 화가는 다시 그 긴장을 풀어헤치고 자유를 얻는다. 자유, 눈부신 자유를 얻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들이 도달해야 할 경지다. 자유를 향한 그 끝없는 자기 행진은 거듭 죽게 하고 거듭 태어나게 한다. 죽고 사는 것을 허용하는 그것이 예술가의 힘이 아니던가. 버리고 다시 새로 얻는 창조의 그 힘이 세상을 감동시킨다. 감동이야말로, 삶의 핵심을 표현 할 때만 가능하다. 어느 시대 어느 때든 삶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 없는 자기 확인위에 세워진 자기 확신이다. 그 힘을 얻고 믿을 때까지 가 본 사람은 안다. 예술은 처음도 끝도 자유라는 것을. 산화는 아름답다. 자기를 산화 시킨 한 폐허에서 예술은 탄성이다.

유휴열은 말이 없는 사람이다. 얼굴이 너부데데하다. 마치 말이 없는 탈을 닮았다. 많은 화가들이 여덟 시간 술 먹고 놀고 두 시간 그림 그린다. 유휴열은 여덟 시간 그림 그리고 두 시간 논다. 유휴열은 끝임 없이 자기 자신을 닦달하고, 실험한다. 실험이 없는 그림은 죽은 그림이고 실험정신이 없는 화가는 죽은 화가다. 실험은 존재의 근거와 시대의 고뇌에서 온다. 끊임없이 인간을 질문한다. 작가가 자기가 이룬 한 세계를 뛰어 넘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죽음에 다가가는 모험에 가깝다. 절박한 생존의 필연이 뒤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연속성과 일관성을 버리지 않되 또 다른 세계의 도착과 건설은 변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도달한 작가 작품을 우리들은 원한다. 그 행로야 말로 인류의 향기로운 도덕이며 윤리이고 자기 운명의 관리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을 얻는 일, 그 일이 우리들은 이리 어려운 것이다.

유휴열의 실험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존재의 의문과 그 물음에 대한 답의 핵심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의 작업이 관심에 머물지, 공감에 머물지, 아니면 감동에 이르러 세상을 고치고 바꿀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것을 그가 알 것이다. 모든 작품은 자기 감동이 첫 관문이니까.

한 점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떨리는 긴장이 나는 좋다. 그림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고 사랑하고 내치는 냉혹함을 기대하며 나는 늘 그림 앞에 선다. 버리고 돌아 설 때 다시 한 번 되돌아가 그 그림 앞에 서는, 이별 후에 오는 새로운 사랑을 나는 원한다. 한 번의 붓질이 지나가는 그 순간과 영원을 나는 사랑한다.

이번 유휴열의 전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기를 기대한다. 놀이가 곧 일이었고, 생이 곧 놀이었던 이 아름다운 진통을 그는 그리고 고치고 맞추고 칠한다. 그 속에서 유휴열은 또 다른 인간 해방의 새로운 세계를 일구고 가꾸어 우리들의 목마름을 해갈 시킨다. 거리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을 때 “어디가?” 하고 물으면 그는 “사나이 가는 길을 묻지 마”란다. 그의 가는 길을 내 어찌 알겠는가. 그는 지금도 소처럼 느리게 더디게 논밭을 갈아간다. 소가 엉뚱한 곳으로 가려고 하면 “어허, 이놈의 소야 이리 바짝 서!” 나직한 목소리로 소를 타이르며 논을 갈아 간다. 예술이 그러 하듯, 화가의 논과 밭은 끝이 없다. 한국 작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오랫만에 모악산에 단비가 내린다.
조규봉 기자 ckb@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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