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열, 반짝이는 영(靈)들의 춤.1-전혜정(미술비평,한국작가심사위원)

유휴열, 반짝이는 영(靈)들의 춤.1-전혜정(미술비평,한국작가심사위원)

기사승인 2016-06-23 15:18:08

바람의 머리냄새를 맡아
쏜살같은 수평을 뚫고
솟구치는
저, 훨

안지명의 시 구절에는 춤추는 나비의 생명의 몸짓이 날개짓을 한다.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은 “춤꾼은 신들의 메신저(Dancers are the messengers of the gods)”라고 했다. 유휴열은 다양한 매체(medium)로 모든 신들의 영(靈)을 손끝으로 붙잡아 작품의 무늬 무늬마다 나비처럼 춤을 아로새기고 ‘영매(medium)’로서 거기에 혼을 불어넣는 춤꾼이자 메신저이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알루미늄 작업은 금속판을 펴고 굽히고 두드리는 작업을 통해 꿈틀대는 춤들이 새겨진다. 영들이 날아오른다.

춤사위에 세상의 모든 시름을 풀어헤치는 <추어나 푸돗던고> 연작의 춤사위는 죽을 운명인 땅과 신적 존재인 하늘 사이에 있는 인간이 자신의 몸짓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순응하면서도 하늘에 닿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는 죽을 운명인 인간이 땅 위에서, 그리고 신적인 것들인 하늘 아래에서 사방을 간직하며 땅을 결집하며 모아들이는 것을 건축(혹은 사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휴열의 작품들은 전주 모악산의 모든 신적인 것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응축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의 춤사위는 땅도 하늘도 아닌 신명의 세계를 손짓하고 있다. 무거워 보이는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땅과 하늘 중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유휴열의 인물들은 단순한 형태로 복잡하고 고단한 현실의 모든 제약을 벗어버리고 춤을 춘다. 나비처럼 새처럼 쏜살같이 저 하늘을 향해 솟구치지는 않지만 유휴열 작품 속의 신명은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춤을 춘다.

나비는 봄여름 태양 아래 그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날아올라 부지런히 꽃들을 누비며 가을 바람과 함께 날개가 쇠하여 알을 낳는 일생일대의 과업을 하고 사그라드는 것이 제 운명이지만, 유휴열은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을 오로지 작품 작품 작품에만 매진하였다. 오랫동안 ‘전주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왔지만, 소위 장식적 모더니즘이 시장을 지배하던 한국 미술계가 유휴열의 날개짓에 같이 신명나게 춤추지 않았음은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슬픈 일이다. 여전히 모던적 강세에 자본주의와 미디어의 총애를 받으며 작품의 상품화와 작가의 스타화 브랜드화와 맞물려 한국적 팝아트가 K-Art의 첨병으로 문화상품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행태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휴열의 화려한 날개짓을 다시 주목하는 것은 한갓 유행 상품의 운명이 될 수 있는 우리 미술계 여러 작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최근 불거진 이른바 대작(代作) 논란과 위작(僞作) 논란, 그리고 여러 미술인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른 지금, 유휴열의 오히려 답답해 보이는 무섭도록 한결같은 성실성과 이제 막 노년기에 접어든 작가가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대작(大作)들은 그가 바로 우리 미술계가 찾고 있었던 산자락에 숨어있는 대가(master)요, 작품들은 우리가 그렇게도 목말라 왔던 우리만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유휴열이 마음껏 날개짓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고 그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다 같이 지켜보며 춤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한국작가상 수상 소식은 최근 어두웠던 미술계에 그의 작품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 뉴스로 다가온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춤의 본질은 현실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잠재적인 운동”이라고 썼다. 유휴열 작품은 견고하고 단단한 재료가 노래하듯 굽이굽이 우리의 산과 들, 강물처럼 춤을 추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튀어나오고 들어간 형상들은 제각기 자신만을 뽐내지 않고 소리는 없으나 흥에 겨운 가락에 맞추어 움직임은 없으나 신명나게 춤추고 있다. 재료의 한계도, 형태의 제한도 벗어버린 그의 춤은 그래서 땅과 하늘, 생(生)과 사(死),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어느 누구도 향하지 않은 채 제 흥에 겨워 오랫동안 수많은 춤사위로 그의 열정을 내보이지만, 그 춤이 울리는 내면의 반짝임과 색채의 찬란함은 우리의 망막에 부딪쳐 우리 피 속의 혼을 일깨운다. 이제 유휴열은 모악산 자락 여려 영(靈)들과 혼(魂)들을 불러보아 자신의 춤을 온 세계에 내보인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나비가 제 날개를 드디어 창공으로 펼쳐 보이듯, 유휴열의 반짝이는 춤은 나비효과가 되어 온 세상에 날갯짓을 울리리라.

잉태도
탄생도
죽음도 춤이다. 훨훨

* 참고 시 - 안지명 ‘배추흰나비의 변이곡선’

조규봉 기자 ckb@kukinews.com

조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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