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둔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 영화라는 점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부산행’의 소재가 재난, 심지어 좀비라는 점에서는 많은 이들이 우려하기도 했다. 그간 재난을 다룬 수많은 한국 영화가 있었지만, 좀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한국 상업 영화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 속, ‘부산행’은 한국보다 프랑스 칸에 먼저 도착했다. 칸에서 상영 후 십여 분간 기립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는 풍문과 몇 가지 찬사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됐고 한국 관객의 호기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 도착한 ‘부산행’은 속도감 있게 내달릴 수 있을까.
바쁜 아빠가 있다. 아빠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아이와 함께 하는 법을 모른다. 아이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이는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한다. 아빠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부산행 KTX에 아이와 함께 탑승한다. 열차에는 이 평범한 부녀 외에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열차는 평범한 사람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하지만, 전국적으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부산행’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달리는 열차 위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그 열차에 평범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나 과거에 집중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에 지리한 설명이 따라붙는 대신 상황과 장면,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정부는 재난을 폭동으로 규정한다. 국민은 안전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는 곧 무기력해진다.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재난을 극복해야만 하는 재앙이 닥친 것이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듯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자세는 다르다. 누군가는 타인의 손을 잡고 끝까지 놓지 않지만, 누군가는 타인의 손을 뿌리치다 못해 잘라버린다. 연상호 감독은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세상의 종말이란 주제를 다루며 성장 중심의 현재 사회에서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부산행’은 평범한 인간이 가진 이기와 이타의 양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지루하지 않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어디서 나타났고 왜 확산 되었는지가 아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는 재난 현상으로 기능하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생존’에 집중된다.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이 영화의 가장 명확하고 주요한 동력이다. 영화는 이 동력을 감각적으로 사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기차 칸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질감은 현실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부분이 있다. 좀비의 이질적인 외형과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기에 긴장감은 배가 되고 몰입은 극대화된다.
뜨거운 가족애와 통쾌한 액션이 적절하게 섞여 관객에게 명확한 질문을 던지는 ‘부산행’은 분명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영화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기존 작품색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개운치 않은 맛을 줄 수 있다. 특유의 시선과 거칠고 강한 에너지가 너무 온순해진 탓이다.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이분법적이란 점도 다소 아쉽다. 배경음악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데다가 남발됐고 과거를 회상하는 짧은 장면은 불청객처럼 연출돼 이질감이 느껴진다.
기대와 우려의 저울질 속 출발을 앞둔 '부산행'. 훌륭하고 불편한 영화를 만들어 왔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상업 안에서 만족스러운 여름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 규모는 커졌고 보기는 편해졌다. 그 편안함이 좋지만은 않은 관객도 있겠지만, 당분간 좀비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데는 큰 이의가 없다. 15세 관람가. 오는 20일 개봉.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