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경주=김희정 기자]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인터넷 괴담을 불식시키고,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겠습니다.”
24일 오후 3시 30분 경주 불국사.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면바지에 점퍼 차림으로 경제부지사 등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24일 저녁, 경주에 또 다시 큰 지진이 올 것 이라는 인터넷 괴담에 김 지사가 직접 지진 진앙지에서 잠을 청하고 주민들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들으며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시키기로 한 것이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불국사를 찾은 관광객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눈 김 지사는 지진으로 상층 난간석이 내려앉은 다보탑(국보 20호)과 용마루와 담장 일부가 파손된 대웅전(보물 1744호)등을 꼼꼼하게 둘러봤다.
종우 주지스님은 “이제 제법 관광객들이 눈에 띄고 있다. 복구도 꽤 완료 됐다”고 지진 피해 복구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김 지사는 “불국사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복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고, 시선이 몰리고 있다”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하루빨리 제 모습을 찾고, 불국사가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경북의 대표 관광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불국사 주지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김 지사는 이내 발걸음을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로 재촉했다.
오후 5시 첨성대를 찾은 김 지사는 관광객들과 일일이 인사와 악수를 나누며 “경주 홍보 많이 해주이소”라며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사님. 경주 괜찮습니까? 어떻습니까?” 관광객들은 김 지사를 보자 불안과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보니 오늘 저녁 경주에 또 한 번 큰 지진이 온다고 하데. 그래서 내가 직접 왔다 아닙니까.” 김 지사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언급하며 “다시는 헛소문이 떠돌지 않도록 괴담을 원천에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사상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관광객 수가 현저히 감소한 경주에 다시 생기가 도는 듯 했다.
가족, 연인과 함께 첨성대를 찾은 관광객들은 지진이 언제 왔냐는 듯 이내 웃음을 띠며 경주의 가을정취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김 지사는 “첨성대는 경북과 나라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재인 만큼 전문가들과 함께 훼손된 부분을 철저하게 진단하고 완벽하게 보수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늘에 땅거미가 내려앉자, 김 지사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차로 20여분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진앙지 인근지역으로 지진으로 길이 솟아오르고 주택 벽면이 갈라지는 등 많은 피해를 입은 내남면 비지리.
마을 진입로를 지나자 곳곳에 지진 피해 가정이 눈에 띄었다.
김 지사가 차에서 내리자 버선발로 마중을 나온 한 어르신은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고 지사님,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 더 이상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마을 주민인 박원자 할머니(81)는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 이후 다시 규모 4.5의 여진이 찾아오자 아들 최상덕씨(52)와 함께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은 박 할머니의 집 안을 둘러본 김 지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김 지사는 박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너무 걱정 말라. 지사가 앞장서서 잘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동행한 도 간부들에게 “이곳은 경주 내에서도 특히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인 만큼 특수지역으로 봐야 한다”며 “경북도에서도 특별히 신경 써 복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김헌진 이장(52)으로부터 오랜 주민숙원사업으로 차량교행이 어려워 불편을 겪고 있는 마을안길 확포장사업 지원 요청을 받고 흔쾌히 수락, 주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후 내남면 부지1리의 마을회관으로 이동한 김 지사는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불안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했다.
준비해온 라면과 김밥으로 주민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오후 7시 56분 2.5규모의 여진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김 지사에게 계속되는 여진에 따른 불안감과 두통, 불면증 등의 ‘지진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했다.
이에 김 지사는 “경주지역에 3개 팀의 ‘지진피해 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순회 상담을 하고, 경주시정신건강증진센터, 경상북도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한 4개 팀 70명이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시민들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를 더욱더 확대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지진피해액 전부를 지원해준다고 기대하는 시민들이 많다. 이에 대해 경주시에서 명확한 지원 기준을 시민들에게 홍보해줄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이에 김 지사는 “지난 9·12 지진은 대한민국 사상 처음이다. 대통령도 직접 방문하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중앙, 도, 경주시에서 긴급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앙부처, 여야 모두 지진에 대해서는 한결 같은 마음이다”며 “이럴 때일수록 같이 손을 잡고 융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실질적인 복구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고, 또 피해가 큰 민간부분에는 더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은 “그래도 지사님이 이렇게 함께 해주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며 “우리 주민들도 하루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여진으로 불안해하던 마을에는 어느새 평온함이 감돌았고, 주민들의 얼굴에도 안도감이 묻어났다.
김 지사는 이곳에서 직접 이부자리를 펴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유언비어에 대해 걱정하는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김 지사는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은 뒤 일요일인 25일에도 주요 피해지역을 순회하면서 주민들을 위로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자연재해인 지진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지진을 계기로 경주와 시민들은 더욱 강해지고 다시 우뚝 설 것으로 믿는다”며 “천년 고도 경주의 명성이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온 국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9·12 지진을 교훈 삼아 지진에 관한 모든 기준과 대응요령, 교육 등 재난대응 체계를 바로잡아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에서는 지진대응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지진복구지원단’을 경주에 상주시켜 피해상황 관리, 피해복구 활동 등 피해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지진관련 학자, 공무원을 일본에 파견해 지진대처 매뉴얼 정비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이번 지진으로 나타난 법적, 제도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조속한 개선을 중앙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특히 경주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10월부터 특별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경주의 관광산업을 되살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