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파파라치] 여름이 안에서 견뎌야 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나가서 맞아야 하는 계절이다.
지난 9일 일요일, 안 사람과 함께 바람도 쏘이고 점심도 먹을 겸 길을 나섰다. 팔당대교와 중리산을 지나는 길은 가을로 접어들어 울긋불긋했다. 춘천시 신북읍에 있는 통나무 닭갈비집은 흐린 날씨에도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두시반경 89번의 번호표를 받아들었을 때 48번 손님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음식점 바로 앞엔 작은 공원을 낀 산책로가 구불구불 펼쳐져 있었고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걷기에 좋았다 한 시간쯤 뒤에 마주한 닭갈비와 막국수는 달려 온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주말 새벽 여섯시 반쯤 시청이나 잠실을 지나시는 분들은 꼬리를 문 버스 행렬을 보게 된다. 경기도의 억새풀 군락지든 남도의 끝자락 청산도 섬 유람이든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대관령 양떼 목장이든 내장산 단풍이든 대한민국의 가을은 저마다 근사하다. 하지만 버스 여행의 매력은 다른데 있다. 운전하는 시간마저 사색을 즐기고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끌어 들이고 버스전용 고속도로가 있어 빠른 귀경길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홀가분한 시간을 넉넉하게 쓸 수 있어서 혼자 다니시는 분도 의외로 많다. 관계로 얽매인 디지털 세상을 떠나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풍광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것인지.
지난 14일 저녁 7시반,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 지하1층엔 23명의 시민이 시인 김사인님의 시론을 듣고 시담을 나누었다. 강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약간의 간식까지 준비되어 있었는데 참가비는 무료였다. 시인은 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고정 관념을 벗어나 겸손한 마음으로 시를 대하고 관념적 상상력이 아닌 눈앞에 매일 마주하는 현실 세계의 실물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공감을 시도할 것을 주문했다. 그것은 쑈윈도우에 있는 옷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입어보고 온몸으로 느껴서 시를 입체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남은 두 번의 강의를 듣고 나면 무슨 말씀인지 선명해 질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인문학 강연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의 생각도 단풍처럼 깊게 물들어 갈 것이다.
가을이 우리 앞에 와 있다.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런 음식과 차창 밖으로 풍요롭게 펼쳐진 풍경과 함께 사색을 나누고 생각을 보태는 교감의 자리로 나가 이 가을을 맞을 수 있다면 당신은 미각과 시각과 감각을 통해 이 가을을 제대로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가을은 어디에 있습니까?
김시래 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