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이소연 기자]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페이지가 넘어갔다. 지난 2013년 교학사 우편향 교과서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교과서 전쟁의 2라운드가 열린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치사를 잊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서 고 박 전 대통령의 분량은 두드러졌다. 불리한 부분은 삭제되고, 미화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이 모인 역사교육연대회의가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정교과서 현대사 부분에서 다른 대통령에 비해 고 박 전 대통령 관련 서술이 압도적이다.
기존 검정교과서(미래엔출판사)에서는 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이 6페이지였던 것에 반해, 국정교과서에서는 총 9페이지로 늘었다. 심지어 전체 교과서의 분량이 20%가량 줄었음에도 고 박 전 대통령 서술 분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고 박 전 대통령의 공적 중 하나인 새마을운동 관련 기술도 크게 증가했다. 과거 교과서에서는 간략하게 설명되던 부분이었다.
내용 면에서도 문제가 지적됐다. 5·16 군사정변 서술에서 ‘헌정 질서를 중단시켰다’는 표현이 사라졌다. 군사정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고 박 전 대통령의 군복 입은 사진 역시 자취를 감췄다. 고 박 전 대통령 시절 대표적 인권탄압 사건으로 알려진 ‘동백림사건’은 ‘북한의 교포와 유학생 포섭 기도’로 서술됐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열 열사에 대해서는 ‘요구가 매번 묵살되자 1970년 자살하였’던 사람으로 표현해 죽음의 의미를 축소시켰다는 지적이 일었다.
국정교과서는 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정책 중 하나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도 박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강행했다. 고 박 전 대통령 미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 박 대통령은 “역사 왜곡과 미화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고 박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효도 교과서’라는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단 부녀관계라는 이유만으로 고 박 전 대통령의 미화를 우려했던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 등에서 드러난 편향된 역사의식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검증청문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고 밝혀 빈축을 샀다. 지난 2012년에도 5·16 군사정변에 대해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역사관은 그가 쓴 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8년 10월 출판된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는 1974년 9월14일부터 1993년 7월26일까지 박 대통령의 일기를 담은 책이다. 박근혜 연구회에서 출간한 ‘박근혜 일기’ 또한 20대부터 60대까지의 일기와 박 대통령이 2004년 국내 소셜네트워크 ‘싸이월드’를 시작한 뒤 다이어리에 올린 글을 엮어 만들었다.
1981년 10월28일. ‘사람이 호랑이를 잡으면 건전한 레포츠이고, 호랑이가 사람을 잡으면 잔학성이라고 한다.’ 사람의 판단이란 자고로 이러하다. 공정하면 얼마나 공정할까?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운명은 운에 맡길 수 없는 것이고 설마가 있을 수 없기에. 시대 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1985년 7월26일. 일본 사람들이 식민사관을 만들어 굳이 ‘우리 민족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심고자 했고, 그럼으로써 자기들의 식민정책을 합리화하려 했던 잘못을 지금 현재는 한국 사람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 저지르고 있다. 70년대 한국 역사에 대해서, 아직도 한국민이 일제시대 그 왜곡된 역사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 왜곡시키고 있는 우리 역사는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의식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도 아니면서 어떻게 자기 나라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이렇게 큰 죄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중략)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당연하고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려고 하고 있다. 마치 70년대에 지상천국이 이룩되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 것은 일부러 나라를 망치려 했기 때문인 것처럼. 70년대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민족이 설 땅이 과연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1989년 10월25일 아! 10주기! 이날을 잘 맞이하기 위해 나는 지난 1년을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을 때 과연 아버지는, 역사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다만 아찔한 생각이 들 뿐이다.
1990년 5월15일. 오늘 ‘조국의 등불’을 보았다. 희망 속에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해 조국을 건설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지도자의 역할, 능력이 어라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지도자를 국장으로 장사 지내고서 매도해온 10년의 세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화염병을 던지며 반항하고, 선배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도덕, 질서, 가치관 등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는 오늘의 현실은 그동안의 역사의 왜곡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자업자득이었다. (중략) 작년에 있었던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도 84.7%가 “박 대통령이 잘했다”고 답하였다. 그런데도 현실은 또 다른 왜곡과 저질스런 장난으로 흐려지려 하고 있다. 왜곡이 또 시작되고 되풀이되는 이 현실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우리 세대, 다음 세대에게 더 큰 불행이다. 이래가지고는 절대로 나라가 바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박 대통령이 유신 체제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표현은 무수하다. ‘그토록 아버지를 깎아내리기에 광분했던 10년의 세월이 있었음에도’ ‘애써 왜곡을 벗겨 놓으면 또다시 새로 만들어 왜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 품으셨던 그 원대한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피땀 흘리셨던 노고, 이 모든 것은 제대로 계승되지도 못하고 내팽개쳐져 있는 것이다’ 등이 대표적 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1989년 11월 9일 일기에 “(중략) 지난 1년간은 억울하게 자꾸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누명, 왜곡시킬 대로 시켜진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데 힘쓰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활발히 알리고 홍보해왔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홍보했다는 매체는 당시 근화봉사단의 월간지였던 ‘근화보’다. 근화보는 고 박 전 대통령과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의 공적을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근대사에서 국민을 구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어야 한다.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같은 위치로 부각돼야 한다”는 성향의 글들이 주로 게재됐다.
박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 사회 양상이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결과일 뿐이다. 병도 제대로 치료하려면 우선 그 원인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 근본 원인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의 왜곡에 있었다”라는 사설을 직접 써 근화보에 실었다.
근화보의 후신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국정교과서,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태우 대표는 “국정교과서 추진을 지식인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정권의 입맛과 시각에 기반한 교과서가 탄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며 ”기존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지 않은 새마을운동, 경제성장 과정 등을 아주 자세히 기술했다. 박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국정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정치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이용하고, 학생들에게 이를 주입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하일식 교수는 “바보가 아니라면 이번 교과서가 고 박 전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 시대를 역사적으로 복권하는 데 집착했던 사람이다. 시간과 사고 자체가 그 시절에 멈춰있다. 아마 (자신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한스러울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는 “검·인정 교과서에 비해 전체 교과서 분량은 줄었으나 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은 증가했다. 1960년대 이후 서술에서는 거의 고 박 전 대통령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5000년 역사에서 고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는 단 18년인데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일각에서는 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 과를 모두 서술했다고 하지만 역사의 평가는 기계적인 공과의 서술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대해 평가할 때 공과를 반반으로 기술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심지어 이번 교과서는 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를 8:2 정도로 기술했다. 이러면 고 박 전 대통령의 독재에 맞선 민주화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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