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지난 2016년 의료계는 유독 다사다난했다. 일부 의료인들의 잘못된 행위가 언론에 오르내렸으며, 국회 청문회장에서는 ‘비선진료’와 ‘가명진료’ 등 낯부끄러운 의혹들이 조명됐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현장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묵묵히 환자와 보호자의 곁을 지켰던 한 해였다. 쿠키뉴스는 2017년 새해를 맞아 미래에 의사를 꿈꾸는 의과대학 학생들과 28년여간 의료현장을 지켜온 선배 의사를 만나 ‘의사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권준혁 학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1학년 장훈영 학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인가
◇장=어릴 적에는 몸이 약한 편이었다. 한동안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당시 주치의 선생님이 좋은 분이셨다. 그 때부터 막연히 의사를 꿈꿨던 것 같다.
◇박=큰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어머니께서 의사가 되길 원했다. 안정적인 전문직종 중 하나이지 않나. 그 당시에는 누구나 먹고 사는 것을 고민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접하고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권=작년에 수업 시간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앞으로 6년 동안 인격적으로 바르게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학생 때는 의료봉사를 통해 좋은 의사가 되고자하는 사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의사 가운 입고 한 달도 안돼서 환상이 깨졌다. 의료 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고 인턴·레지던트 시절에는 더더욱 여유가 없었다. 올해 나이가 쉰셋인데 의사로서 성찰할 수 있게 된지 10년이 안됐다.
-최근 국정농단사태가 의료계에 번졌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권=의사를 꿈꾸는 일원으로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는 없어져야 할 일이고 모든 의료인 개개인들이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박=의사라는 직업에서 철학이 빠지면 기술자에 불과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사들은 훌륭한 기술자일 수는 있겠지만 의사로서는 실패했다. 앞으로 의료인들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의과대학 교육에 있어서 철학이 결여된 것도 문제라고 본다.
-철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가
◇박=한마디로 시대정신이 부족하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문가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직업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사로서 사명감과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에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의대생들이 해야 하는 공부가 너무 많다. 중점이 성적에 매몰돼있는 점이 아쉽다.
◇장=의료 외에 전반적인 교육도 필요한 것 같다. 이과계통이라 그런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고 학교에서도 강조하는 편이다. 아직 예과 일학년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여행, 인간관계 등 학교 밖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소견을 넓히고 싶다. 나중에 의사가 됐을 때 환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의대 생활 중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권=성적에 대한 고민이다. 일정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진급을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로 설정도 고민된다.
◇박=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다. 5년 전까지도 힘든 일이 있으면 꼭 시험 보는 꿈을 꿨다. 우리 때보다 요즘 학생들은 시험 스트레스가 커서 안타깝다. 진로를 설정할 때는 당장 인기 있는 과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15년 후의 모습을 내다봐야한다.
-최근 의료인들의 이미지에 손상이 많았다. 2017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
◇권=최근 불미스러운 일들에 의료계가 개입된 사실은 예비 의료인으로서 매우 충격적이고 선배들에게도 큰 실망감을 느꼈다. 새해에는 의료인으로서 가졌던 첫 마음을 다시 새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오직 환자를 위하는 참된 의료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장=스스로와 환자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양심적이고 정의롭게 인술을 베푸는 의료진이 됐으면 한다. 또한 환자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의 환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선배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의사의 길’은 무엇인가
◇권=어떤 상황에서도 눈앞에 있는 환자를 외면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의사의 길을 걷고 싶다. 환자와의 진실한 의사소통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고 또 이를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얻는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장=환자와 주변 동료들과 소통하고 신념을 지키는 의사. 다른 직업과 달리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단순히 의술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인술을 베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음가짐이 중요한 직업인만큼 항상 환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박=의사라는 직업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함이라면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이 빠르다. 기본적으로 사명감과 보람으로 하는 일이다. 정의로운 의료가 보편화돼야한다. 배려와 관심도 중요하다. 환자들은 의사가 최선을 다했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통한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과 선배 의사가 제시한 ‘의사의 길’에는 뚜렷한 정답은 없었다. 다만 동료 의료인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개개인의 신념을 지키고자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해에는 보다 진실한 의료인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