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가 외면한 ‘소녀상’…지킴이는 외롭다

[기자수첩] 정부가 외면한 ‘소녀상’…지킴이는 외롭다

기사승인 2017-01-12 11:26:06

[쿠키뉴스=심유철 기자] “소녀상 철거하려면 외교부가 직접 나서라”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은 지난 10일 동구 일본 총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요구한 외교부에 이같이 답했다. 애초 외교부는 ‘부산 소녀상 설치 문제는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 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태도를 바꿔 2차례나 소녀상 이전을 요구했다.

박 구청장은 “외교부가 이제 와서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전 또는 철거 지시를 해도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동구청은 시민단체들이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을 강제 철거했다. 그러나 국민적 반발에 직면, 업무가 불가능해지자 결국 지난 30일 소녀상 재설치를 허용했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 문제에 방관하는 태도를 보인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측은 지난 6일 소녀상 설치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 조처했다. 당시 일본 측은 “12·28 한일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하라”며 소녀상 철거를 한국 측에 요구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겠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내놓았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보다 못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일본군위안부사죄배상과 매국적합일합의폐기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소녀상 지킴이)이다. 이들은 한·일 합의가 이뤄지고 이틀 뒤인 지난 2015년 12월30일을 시작으로 노숙농성을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녀상과 함께 생활했다. 

이 학생들은 어떻게 소녀상을 지키고 있을까. 지난 7일 기자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이들의 텐트를 찾았다. 소녀상 지킴이가 머무는 공간은 4.9587㎡, 약 1.5평이다. 성인 남성 4명이 다리를 뻗기 힘들 정도로 비좁았다. 내부에는 전기장판 두 개와 난로가 있었지만,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 공사장에서는 먼지가, 인근에 주차된 경찰 버스에서는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 경찰 버스의 엔진 소리와 자동차 불빛으로 인해 잠에 들기 어려웠다. 다음날 아침 코를 풀었더니 시커먼 덩어리가 가득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을 지키려는 학생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소녀상 지킴이 최혜련(22·여) 대표는 “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라며 “노숙농성의 환경이 아무리 나빠져도 내 사지가 온전하다면 끝까지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가해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측은 한국 정부에 합의금 10억엔을 지급했다며 더는 위안부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말 것과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런 적반하장격의 태도를 보이는 일본에 대응하려면 결국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소녀상 지킴이가 아무리 노숙농성을 한들, 정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현재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총 40명. 올해 100세를 맞은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는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에서 “일본이 진정으로 사죄한다면 나는 편히 눈을 감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고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tladbcjf@kukinews.com

심유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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